무하마드 알리 (1970) ⓒ1970 Yousuf Karsh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 전’
2년만에 다시 온 명품전시
26일부터 세종문화회관서 글렌 굴드·정장 입은 알리
손과 풍경 주제 연작들도
국내 첫선 원본 대거 걸려 그는 터키 압제에 시달렸던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이었다. 14살에 캐나다에 쫓겨온 뒤 사진사로 시작해 사진 거장으로 우뚝 섰지만,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 탓에 작가는 평생 인간의 영혼을 찍는 데 민감했다. 세계적 명사들의 무의식적 표정이나 해프닝, 비범한 존재감 등을 잡아낸 그의 사진들은 영원의 기억으로 남았다. 잔뜩 골난 표정으로 쏘아보는 윈스턴 처칠, 우아하면서 가냘픈 오드리 헵번의 얼굴선, 스웨터 차림의 헤밍웨이 등으로 기억되는 거장 유서프 카쉬(1908~2002). 그의 명품 인물사진들이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온다. 세종문화회관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하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 전’이 26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2009년 탄생 100돌 기념전으로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나 선풍을 일으켰던 거장의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리바이벌이지만 국내 소개되지 않은 대표작 원화들이 대거 선보인다.
새롭게 등장한 사진 속 명사들의 면모는 2009년 전시 못지않다. 명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그레이스 켈리, 명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 애니메이션의 거장 월트 디즈니,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화가 마르크 샤갈 등이 특유의 사진 프레임 속에 담겨 나온다.
카쉬 사진들은 피사체 인물과의 허물없는 소통을 강조했다. 찍을 인물을 사전에 철저히 연구했고, 촬영 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찍히는 사람이 작가의 존재와 친숙해진 상태에서 찍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명암 뚜렷한 렘브란트 성화 등에서 영향받은 인공조명 작업까지 더해져 그의 위인, 스타 사진들은 가장 인상적인 실존의 한순간들을 포착해냈다. 독특한 소통 과정 덕분에 카쉬의 명품 사진 전후에는 숱한 일화들 또한 따라다닌다.
이번 전시에서도 앞선 전시처럼 풍성한 에피소드, 명사들의 촬영 소감 등을 함께 읽을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이 1941년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 윈스턴 처칠을 찍은 두 사진이다. <라이프>지에 실려 유명해진 화난 처칠상이 2009년에 이어 나왔고, 그 직후 찍은 웃는 처칠상이 처음으로 나란히 걸린다. 화난 처칠상은 카쉬가 처칠 특유의 카리스마를 담기 위해 처칠이 물던 시가를 낚아챈 뒤 인상 쓰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 웃는 처칠상은 그 뒤 잠시 적막이 흐르자 처칠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 장 더 찍어달라고 해서 찍었다. 정치인의 재기 덕분에 대비되는 표정의 두 명품이 나온 셈. 팝아트의 교황 앤디 워홀은 카쉬가 어떻게 그렇게 유명해졌느냐고 묻자 “다가오는 시대에는 누구라도 15분이면 유명해질 수 있다”고 답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누구든 쉽게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된 지금 시대를 예언하는 듯하다.
바흐 전문가로 일세를 풍미한 음악 천재 굴드는 촬영 당시도 피아노 연주를 멈추지 않았다. 카쉬는 “연주에 푹 빠져 카메라와 조명을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권투 영웅 알리는 말쑥한 정장을 입고 나와 찍었다. 카쉬는 “그만큼 오래도록 공개적인 증오를 받으며 살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면서 “알리의 정장은 스스로의 자존심과 존경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고 회상한다. 이밖에도 우아한 그레이스 켈리, 소녀 같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가냘픈 오드리 헵번 등 1960년대 동년배 여배우들의 이미지 대결, 그리고 음모가 같은 이미지로 사진을 찍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시종 소년 같았다는 회고담이 깃든 월트 디즈니의 사진들도 엿볼 수 있다.
전시장엔 인물 외에 ‘손’과 ‘풍경’이란 두 주제의 연작들이 더 나온다. 카쉬가 유난한 애착을 보였다는 ‘손 사진’들은 인물 성품과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손의 특징을 부각시켜 인물의 삶과 꿈틀대는 혼을 투영하고 있다. 카쉬가 1950년대 캐나다 사회상을 담은 흑백 다큐사진들로 구성한 ‘풍경’은 2차 대전 전후 경제 개발상을 기록한 다큐 작업의 결과물들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인간의 삶’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물사진 못지않게 높은 평가를 받는 수작들이다. 모든 출품작은 카쉬가 직접 인화한 오리지널 빈티지 원본 프린트들이다.
‘영혼의 사진가’ 카쉬가 20세기 영웅들을 바라봤던 그때 그 시선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성인 9000원, 초중고생 8000원. 5월22일까지, 1544-1681.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26일부터 세종문화회관서 글렌 굴드·정장 입은 알리
손과 풍경 주제 연작들도
국내 첫선 원본 대거 걸려 그는 터키 압제에 시달렸던 아르메니아 난민 출신이었다. 14살에 캐나다에 쫓겨온 뒤 사진사로 시작해 사진 거장으로 우뚝 섰지만,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 탓에 작가는 평생 인간의 영혼을 찍는 데 민감했다. 세계적 명사들의 무의식적 표정이나 해프닝, 비범한 존재감 등을 잡아낸 그의 사진들은 영원의 기억으로 남았다. 잔뜩 골난 표정으로 쏘아보는 윈스턴 처칠, 우아하면서 가냘픈 오드리 헵번의 얼굴선, 스웨터 차림의 헤밍웨이 등으로 기억되는 거장 유서프 카쉬(1908~2002). 그의 명품 인물사진들이 2년 만에 다시 한국에 온다. 세종문화회관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주최하는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 전’이 26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막을 올린다. 2009년 탄생 100돌 기념전으로 국내 관객과 처음 만나 선풍을 일으켰던 거장의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리바이벌이지만 국내 소개되지 않은 대표작 원화들이 대거 선보인다.
글렌 굴드 (1957) ⓒ1957 Yousuf Karsh
월트 디즈니 (1956) ⓒ1956 Yousuf Karsh
엘리자베스 테일러 (1946) ⓒ1946 Yousuf Karsh
마르크 샤갈 (1965) ⓒ1965 Yousuf Kar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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