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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금발 미인이 나타났다, 짝퉁 나이키를 신고

등록 2011-04-19 19:50

작가 코디 최의 연작 ‘선물’. 한국의 아이들에게까지 뿌리 깊게 자리잡은 서구화된 미적 기준을 풍자한 작품이다.
작가 코디 최의 연작 ‘선물’. 한국의 아이들에게까지 뿌리 깊게 자리잡은 서구화된 미적 기준을 풍자한 작품이다.
미국생활 20년 경계인 눈으로 서양에 경도된 한국문화 풍자
“외부기준에 지배당한 현실…혼란스러운 내 삶과 닮았다”
개인전 연 개념미술가 코디 최

문화이론가로도 알려진 개념미술 작가 코디 최(50)는 스스로를 미국과 한국의 경계인이라고 생각해왔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이민자일 뿐이며, 2004년 고국에 돌아와서도 역시 ‘이중적인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미술을 매개로 지난 20여년간 매달려온 작업도 ‘미국 사회 속 동양계 이방인의 정체성 찾기’를 주제로 한 개념적 이미지와 조형물들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후기식민주의’(포스트콜로니얼리즘)라는 난해한 주제로 풀어가는 이 작가가 지난 14일부터 서울 청담동 피케이엠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개인전 ‘후기식민주의의 두 번째 장’을 열고 있다. ‘이중적 이방인’의 시각으로 본 오늘날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화두로 삼은 이 전시에서 그는 제작 아이디어 자체를 작품화한 개념미술 작품들을 내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2006~2009년 작업한 ‘선물’ 연작. 추상화처럼 비치는 흐릿한 금발 이미지로 가득 채워진 거대한 캔버스를 조그만 아동용 실내화가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신발에는 사인펜으로 유명 브랜드인 ‘나이키’ 로고가 조잡하게 그려졌다. 서양의 미적 기준에 길든 한국인의 맹목적 모방심리를 풍자한 것이다. 서구의 패션·뷰티·영화·연예 잡지 등에서 잘라낸 이미지들을 콜라주해 일그러진 하트 모양으로 만든 ‘무화된 의식’ 연작 또한 같은 맥락이다. 자아의식 없이 타인의 평가에 집착하고 의존하려는 이 시대 한국 젊은이들의 ‘가짜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이 시대 한국 젊은이들의 자아의식 상실을 표상한 작품 ‘무화된 의식’ 앞에 선 코디 최
이 시대 한국 젊은이들의 자아의식 상실을 표상한 작품 ‘무화된 의식’ 앞에 선 코디 최
“외국에 오래 살다 한국에 와보니까 낯선 것들이 자꾸 눈에 보여요. 한국에 와서 본 한국 사람의 마음 상태, 또 제가 받아들일 수 없었고,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을 작품화하고 싶었어요.”

코디 최는 “이 전시의 큰 흐름은 바로 마음에 대한 작업들”이라고 했다. “한국에 처음 돌아왔을 때 매우 기뻤지만 마음은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때부터 마음에 대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전시장에서는 자신이 갈등했던 문제들을 ‘선물’, ‘무화된 의식’, ‘극동의 왜곡’으로 개념화한 작품 시리즈로 보여주고 있다.

“놀랐던 건 한국 젊은이들 눈이 서양의 미인관에 거의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었죠. 과거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미인의 기준이 키가 큰 게 아니었는데, 최근 한국에 오니까 전지현처럼 늘씬한 여자들이 미인을 대표하더군요. 이런 서구 미의식이 한국 아이들의 시선까지 지배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작품 ‘선물’에서 금발 그림 받치는 아동용 신발은 그런 현실을 암시한 겁니다. ”

작품 제목인 ‘선물’은 프랑스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의 말에서 끌어쓴 것이다. 모스는 20세기 초 문화가 뒤섞이면서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 흔적을 남기는 것을 ‘선물’로 규정했다. 작가는 ‘선물’이란 개념이 “결국 그 흔적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꾸게 될 정도로 무서운 말”이라고 강조했다. 쪼그라든 하트 모양의 작품 ‘무화된 의식’ 또한 현재 우리 젊은이들이 외국 잡지가 가르쳐주는 대로 살아가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자기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밖으로부터 이뤄지는 현실을 보고 하트가 표상하는 마음의 문이 쪼그라들고 엉망진창으로 되어가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설명이었다.

‘무위자연’을 주창한 사상가 장자의 잠언이 담긴 <내편>(內篇)의 내용을 영어로 옮기고, 다시 한국어로 표기한 네온 작업 ‘극동의 왜곡’ 연작도 흥미롭게 읽힌다. 국내 식당에서 영어와 한글, 한자 표현이 뒤섞인 ‘최고급 한우 스테이크’라는 메뉴판을 우연히 본 뒤 ‘문화의 이중중첩’ 현상을 느끼면서 착상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문화와 한국문화, 서양문화의 복잡한 그물망 속에 깔린 한국 젊은이들의 정신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코디 최는 고려대 사회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3년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간 뒤 현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1986년 미국에서 작가로 데뷔한 이래 ‘문화충돌’과 ‘후기식민주의’, ‘서양문화에 대한 공격’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5월15일까지, (02)515-9496.

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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