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25만 관객 사로잡은 뮤지컬 ‘빨래’
달동네 좁은 길을 지나 도착한 네모난 방. 서울살이 5년째인 나영이 6번째로 이사한 집, 아니 방이다. 옆방에는 동대문 옷 장사 미숙이, 건너편 방에는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 솔롱고가 방을 집 삼아 살고 있다.
원래 방은 집 안에서 최소한의 사생활을 위한 분리 공간이지만, 이들에겐 방이 곧 집이고 집이 곧 방이다. 이들을 묶는 건 언제 옮겨야 할지 모르는 방 한칸을 근거 삼아 서울이란 공간에서 떠다니는 이방인이란 운명이다. 이는 남는 방 하나에 살며 폐지를 줍는 집주인 할머니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 높고 비좁은 어딘가의 귀퉁이로 이들을 모으고 선심 쓰듯 네모진 방 한칸을 내놓는 서울이라는 공간. 뮤지컬 <빨래>는 냉혹한 서울에 대한 세련된 고발이다.
<빨래>는 2005년 초연 이래 올해 4월까지 관객 25만명을 모았고, 아직도 80%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장기 공연 중이다. 이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배경으로 최저임금, 생리휴가, 부당해고,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같은 불편한 소재들을 무겁지 않고 따뜻한 터치로 녹여낸 대본과 연출의 힘을 꼽는다. 거기에 더해 <빨래>를 돋보이는 텍스트로 만드는 중요한 비결은 이 따뜻한 뮤지컬이 결코 착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나영은 동료의 부당해고에 맞서 항의할 줄 알고, 집주인 할머니는 상당히 급진적인(?) 과거를 갖고 있다.
마주 보는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 만난 나영과 솔롱고가 방을 합치면서 극은 끝난다. 하지만 인물들의 삶에서 사실상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나영은 서점 대신 파주 창고에 나가 고된 노동을 견뎌야 하고, 솔롱고는 ‘사장님’의 인심에 따라 임금을 떼이거나 받거나 할 것이다. 대소변 못 가리는 장애인으로, 빨랫줄에 널린 흰 기저귀로만 존재를 내보이는 주인 할머니의 딸 ‘둘이’ 또한 방에서 나와 어머니 이외의 다른 사람을 만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삶은 원래 아름답다는 거짓 희망 대신, 절망적이지만 ‘지지 않을 거다’라는 나영의 마지막 노래로 맺는 결말 또한 감동적이다.
솔직해서 사랑스러운 뮤지컬 <빨래>의 9차 공연은 대구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6월19일까지 대구 남일동 문화예술전용극장CT(053-256-0369), 9월4일까지 서울 동숭동 학전그린소극장(02-928-3362).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명랑씨어터 수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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