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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살인마 낳은 ‘잔혹한 사회’ 고발

등록 2011-04-26 19:55

연극 ‘주인이 오셨다’
연극 ‘주인이 오셨다’
[리뷰] 연극 ‘주인이 오셨다’
그의 이름은 ‘자루’다. 탄자니아 출신으로 한국인 포주에게 팔려 이 땅에 들어온 뒤 탈출한 흑인 여성 ‘순이’의 원치 않았던 자식이다. 순이를 숨겨준 할머니 금옥이 자기 아들 종구가 순이를 겁탈한 날 꿈에서 세상을 훔치는 낡고 더러운 자루를 보았다며 붙여준 것이다. 어미 순이의 이름 역시 금옥이 지어줬다. 금옥은 아들 종구와 순이를 결혼시킨 뒤 아들에게 절대로 순이한테 말을 가르쳐선 안 된다고 일러준다. 언어를 가지는 순간 순이는 자기들과 같은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순이는 금옥과 종구의 소유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을 2차적 해석 없이 그대로 실행하는 자루 또한 소통 가능한 자들의 범주 바깥에 있다. 이런 부조리의 결말로, 자기 주변 사람들과 할머니 금옥, 아비 종구까지 마구 죽이는 지루의 연쇄 살인 행각은, 그래서 세상과 대화하는 왜곡된 방식이다.

‘2011 국립극장 봄마당’의 마지막 연극 <주인이 오셨다>는 <인류 최초의 키스>, <발자국 안에서> 등에서 부조리한 사회 속의 왜곡된 희극성을 그려 온 김광보 연출가와 고연옥 작가가 4번째로 만난 작품이다. 최소한의 무대 장치로 풀어낸 20여년의 시공간에서 복잡한 이야기 구조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등장인물들은 주인과 주인이 아닌 자로 철저히 구분된다. 해당 사회의 언어를 가졌는지가 구분의 잣대다.

언어는 ‘말’을 포함해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인정하는 주류의 기호들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1차적 생존 조건인 ‘말’을 갖지 못한 순이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할 뿐 관계의 맥락에서 해석하지 못하는 자루나, 순이를 소유해 주인 자격을 얻으려는 금옥, 종구, 포주 누구도 주류 사회에서 주인의 지위에 올라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시종 난해하고 부조리하게 진행된 극은 순이가 ‘자루’를 재해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날 때부터 더럽고 비열하게 살 운명의 자루는 아니었다는 위로다. 5월1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02)3279-2233. 박보미 기자, 사진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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