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난 구멍에 자리 잡은 염소와 꽃무늬 옷을 입은 소녀도 카메라를 본다.
이종선 사진전 ‘너는 나에게로 와서’
인도식 이름 ‘고빈’(Go wind)으로 더 많이 알려진 사진가 이종선씨의 개인전 ‘너는 나에게로 와서’가 3일부터 서울 통의동 류가헌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어린이날을 맞아 동물과 어린이가 함께 등장하는 사진만을 모았다.
작가의 사진 속에 찍힌 동물들은 사람과 닮았다. 아니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보인다고 하는 편이 낫다. 이씨는 인도, 티베트, 몽골 등지를 바람처럼 10여년간 다녔다. 주로 관광객이 찾지 않는 곳을 방문해 한 장소에서 최소 한 계절, 그러니까 3개월 정도 살면서 찍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동물과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 앞에서 편안해한다. 찍힌 이들이 편하면 보는 관객들도 편해진다. 인도 잔스카 계곡에서 만난 소년들은 사진 속에서 카메라를 보고 있다. 그 소년이 안은 고양이는 카메라를 외면한 채 꽃냄새를 맡는다.(아래 사진) 벽에 난 구멍에 자리 잡은 염소와 꽃무늬 옷을 입은 소녀도 카메라를 본다.(위) 둘의 눈이 닮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닮았다. 조금 더 쳐다보고 있으니 둘 다 웃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에게 유난히 사진 속 동물들이 더 편안하게 보이는 비결을 물었다. “현지에서 밥을 해먹을 때 주변 동물들에게 나눠줬더니 금방 친해졌다. 그들의 가식 없는 순수가 좋았다. 그들은 내 여행의 오아시스였으며 친구였다.”
작가는 현지인들과 동물들이 “마치 배고픈 이웃이 있으면 밥을 나누듯 한다”고 말한다. “아무개네 애완동물이란 개념 같은 것은 아니고 그냥 동네 개, 동네 염소, 동네 고양이다. 동네 동물이지만 이름을 불러준다. 재미있는 점은 한 동물을 놓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 알아듣는다.”
관광지에서 하루 정도 머물면서 쏜살같이 찍는 사진과 다를 수밖에 없다. 몇 달씩 머물면서 찍으면 그 동네 아이들이나 그 동네 동물들이 낯설어할 일이 없다. 이씨의 눈동자는 현지 아이들이나 동물들처럼 맑고 깊었다. 닮았으니 금방 친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긴 설명이나 배경에 대한 해설이 필요 없다. 작고 사진가 김기찬의 작품집 <골목길 풍경>에서 1970년대 서울 산동네 골목에서 마주친 꼬마들이 카메라를 보듯, 작가의 사진 속 강아지, 염소, 당나귀는 착한 이웃집 아저씨 이종선의 카메라를 본다. 15일까지. 서울 한남동 여선교회관 1층 인도문화원에서도 같은 기간 그의 전시가 열린다. (02)729-2010.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소년이 안은 고양이는 카메라를 외면한 채 꽃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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