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가 이윤엽씨가 8일 경기도 수원시 행궁동 대안공간 ‘눈’의 벽에 걸린 자신의 판화작품 <용산 재개발의 아침> 앞에 앉아 11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리고 있는 용산·대추리 판화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군기지 문제 닮은 오키나와서
대추리·용산 작품 200점 전시
“일본인들도 연대의식 느낄 듯”
대추리·용산 작품 200점 전시
“일본인들도 연대의식 느낄 듯”
판화가 이윤엽 일본서 개인전
그는 늘 현장과 사람들 속에 있다. 2005~2006년 경기도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2008~2009년 용산 재개발 사건, 2010년 지엠대우 비정규노동자 고공 농성 등의 현장에 그는 함께했다. 어느샌가 슬며시 나타나 현장의 모습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화에 담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이 사람. ‘현장’ 사람들은 그래서 그를 ‘파견미술가’라고 부른다.
판화가 이윤엽(43)씨. 그가 이번엔 오키나와를 만났다. 11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의 사키마미술관에서 <이윤엽 판화전-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이름으로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 쪽 초대로 6월27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에서 작가는 1년반 동안 대추리 현장에서 지냈던 기억들을 판화에 새긴 작품 40여점과 용산 철거민 투쟁을 그린 작품 40여점 등 200여점을 선보였다. 그는 “200개 작품 모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며 “대추리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오키나와 사람들이 연대의식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오키나와가 어떤 곳인가. 2차 대전 이후 미군이 장기주둔하고 있으며 지난 수년 동안 후텐마 미군기지 현외 이전 요구 싸움으로 시위가 끊이지 않은 곳이다. 미군 기지라는 공통의 문제를 지닌 한·일의 두 지역이 이씨 작품으로 교감하게 된 것이다.
사키마미술관은 작은 개인미술관이지만 연간 약 4만명의 학생들이 방문하는 오키나와 평화투어의 메카이다. ‘인간과 전쟁’, ‘삶과 죽음’ 등 현실적인 주제 전시로도 유명하다. 2005년 2월엔 홍성담의 판화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사키마 미치오 관장은 “60년 전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총검과 불도저로 모든 것을 빼앗긴 오키나와와 평택 대추리는 똑바로 겹친다”며 “이윤엽 전시회를 통해 오키나와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희망이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윤엽은 국가 폭력이 자행되는 곳이면, 밤새워 판화를 찍어 마련한 돈과 화구를 어깨에 메고 달려간다. “언젠가부터 현장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택 대추리가 그 계기였어요. 선배들이 하는 민중미술을 싫어하면서도 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답답해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대추리에 들어갔습니다. 민중이나 공동체, 투쟁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거기서 ‘민중미술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뒤로 작업이 자유롭고 편해졌어요.”
그는 대추리에서 2005년 겨울부터 1년반을 살면서 나날의 싸움과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벽화와 판화로 기록해왔다. 무너져버린 대추초등학교 창문과 담벼락에 주민들의 얼굴을 그렸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버린 집을 단장했고 보일러를 고치는 작업을 도맡았다. 대추리 버스정류소 뒤편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주민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대추리 평화역사관’을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강아지처럼 즐거웠어요. 매일매일 재미있었고,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2006년 5월4일 땅을 빼앗기면서 어르신들이 저를 끌어안고 절규하는데 저는 눈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싸움의 주체와 예술가의 괴리감 같은 게 쫙 오더라구요.” 그날 이후 그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는 게 죄스러워 스스로를 방에 가둬놓고 대추리 판화 작업에 몰입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간판장이로 살았다. 그러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서 26살 늦은 나이에 대학을 입학했고 1996년 졸업 즈음에 운명처럼 목판화를 만났다. 2002년 <앰네스티 인권전>과 2003년 <통일 미술제>, 2004년 <노동미술굿 비정주 비정규 근로동>, 2005년 <땅의 기억전> 등 굵직한 기획전과 개인전을 통해 주목받는 참여작가로 떠올랐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민중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일본인 여성 독립큐레이터 이나바 마이(41·국민대 미술이론학과 박사과정)씨가 이윤엽을 사키마미술관에 소개하면서 이뤄졌다. 그는 2003년 홍성담 작가의 추천으로 이윤엽을 처음 만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윤엽 작가의 판화 작품은 강함과 소박함이 함께 들어 있다”며 “현장미술을 하는 작가의 ‘태도로서의 미술’을 실천하는 이윤엽씨가 오키나와의 젊은 작가들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작품 <연꽃을 든 사람>
“그전까지는 강아지처럼 즐거웠어요. 매일매일 재미있었고,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2006년 5월4일 땅을 빼앗기면서 어르신들이 저를 끌어안고 절규하는데 저는 눈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싸움의 주체와 예술가의 괴리감 같은 게 쫙 오더라구요.” 그날 이후 그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보는 게 죄스러워 스스로를 방에 가둬놓고 대추리 판화 작업에 몰입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간판장이로 살았다. 그러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서 26살 늦은 나이에 대학을 입학했고 1996년 졸업 즈음에 운명처럼 목판화를 만났다. 2002년 <앰네스티 인권전>과 2003년 <통일 미술제>, 2004년 <노동미술굿 비정주 비정규 근로동>, 2005년 <땅의 기억전> 등 굵직한 기획전과 개인전을 통해 주목받는 참여작가로 떠올랐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민중미술을 공부하고 있는 일본인 여성 독립큐레이터 이나바 마이(41·국민대 미술이론학과 박사과정)씨가 이윤엽을 사키마미술관에 소개하면서 이뤄졌다. 그는 2003년 홍성담 작가의 추천으로 이윤엽을 처음 만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윤엽 작가의 판화 작품은 강함과 소박함이 함께 들어 있다”며 “현장미술을 하는 작가의 ‘태도로서의 미술’을 실천하는 이윤엽씨가 오키나와의 젊은 작가들에게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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