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흐레틴 외렌리의 ‘음모의 벽’
‘비 모빌 인 임모빌리티’전
네덜란드서 활동 15명‘기억의 공유 방법’ 고민
네덜란드서 활동 15명‘기억의 공유 방법’ 고민
‘예술가는 모든 경험과 기억을 예술로 형상화하고 사람들과 공유해야 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주 작가를 주축으로 한 다국적 미술작가 15명이 이런 과제를 바탕으로 지난달 29일부터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비 모빌 인 임모빌리티’전을 열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기’라는 뜻이다. ‘형상화된 기억’을 부제로 한 이 전시회에서 작가들은 각자 경험한 사적인 기억과 공동체적인 기억, 정치 사회적인 기억을 비디오, 드로잉,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자 시도했다. 또한 그 기억이 누군가를 통해서, 또 다른 상황에서, 또 관객들을 만나서는 어떻게 변할까에도 주목했다. 관객들은 작가들이 주변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고, 또 재구성하는지 엿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 작가 레오나르트 레털헬름리흐(54)는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년 뒤에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한 연쇄폭탄테러 사건을 다뤘다. 그는 <약속된 천국>이라는 52분 분량의 비디오 작품에서 인도네시아 정부와 미국으로부터 알카에다의 추종자로 지목된 용의자 우마르 파텍을 인터뷰하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편견과 혼란을 폭로했다.
터키 작가 파흐레틴 외렌리(42)는 오랜 세월 여러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며 겪은 경험과 그 기억을 디지털 이미지와 프린트물, 비디오(40분)에 담은 <음모의 벽>을 선보인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 사업 문제를 4대강 지도와 이명박 대통령의 초상화를 이용한 설치미술로 꾸며 눈길을 끈다. 한국인 작가 함양아(43)씨는 열판 위에서 녹아내리는 예술가 자신의 초콜릿 전신상을 작품화한 <예술가>를 전시했다. 이 작품은 미술계 안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이 초콜릿과 같은 중독성을 가지는 동시에 그런 관계망이 한순간에 소멸할 수 있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예술의 변질과 정치·경제적 음모를 들춰내어 우리의 기억들이 마치 고착된 증거로 간주되고 있는 현상을 경계한다.
다음달 12일까지 서울 전시를 마친 뒤엔 터키 이스탄불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전시도 예정돼 있다. (02)379-3994.
정상영 기자, 사진 토탈미술관 제공
함양아 ‘예술가’
파흐레틴 외렌리의 ‘음모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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