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 관객 속에 앉아
질문하고 서로 생각 나눠
모두가 연극 완성에 참여
질문하고 서로 생각 나눠
모두가 연극 완성에 참여
연극 <디 오써>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공연장에는 약속된 무대가 없고 마주 보는 40여개의 객석이 대신 자리잡고 있다.
네 명의 배우는 연극이 시작되기 전 슬그머니 관객들 틈 사이에 섞여 앉는다. 불이 켜지면 관객 ‘주완’ 역을 맡은 배우 김주완씨가 관객에게 “극장에 오면 기분이 정말 좋지 않나요?”라고 묻는다. 배우는 옆자리에 앉은 관객에게 이름을 묻고, 직업을 묻고, 기분을 묻는다. 쑥스러워하는 관객에게 연방 “예쁘다, 멋진 일을 한다”고 칭찬한다. 갑자기 혼자 화를 내다가도 뜬금없이 모든 관객에게 초콜릿을 나눠주기도 한다. 각각 관객, 배우, 작가 역을 맡은 배우들은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소녀를 소재로 한 가상의 극중극 <파볼>을 만들고 관람하면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한다.
관객들은 헷갈린다. 배우들의 대사는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방식과 독백을 오간다. 객석과 경계지어진 무대,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연극을 기대하고 온 관객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지루할 수도 있고 불쾌할 수도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디 오써>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지우고 배우와 관객의 고정된 역할을 지우려고 시도한다. <디 오써>의 관객은 관람자인 동시에 연극을 함께 만드는 창작자가 된다. ‘작가’(the Author)를 뜻하는 제목은 관람자를 포함해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하는 데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연극을 만드는 창작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12일에 열린 관객과의 좌담회는 이 연극의 연장선에 있다. 연극 공연에 앞서 <디 오써>의 김동현 연출가와 출연 배우 김주완, 전미도, 김영필, 서상원, 연극평론가 김옥란, 노이정, 연극배우 박완규, 성여진, <디 오써>를 관람한 30여명의 관객이 모여 ‘우리는 연극을 왜 보는가’라는 주제로 자유로이 이야기를 나눴다. 연극 제작진과 관객의 토론회는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다.
참가자들은 관객과 배우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드는 <디 오써>의 형식이 우리나라의 관객들에게 낯선 방식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연극 관람의 의미로 주제를 확장해 이야기를 나눴다. ‘왜 연극을 보는가’라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합일된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참가자들은 두 시간 동안 주제에 대한 생각과 <디 오써>에 대해 하고 싶은 대화를 나눴다. 연극평론가 노이정씨는 “과거에는 무대라는 제한된 프레임에서 재현되는 사건을 보기 위해 연극을 봤다면, 이제는 관객들이 무의식의 세계를 자극하는 체험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 오써>를 네 번 봤다는 관객 전혜선씨는 “<디 오써>를 보면서 관객인 동시에 관객 역할을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놨다.
<디 오써>는 2009년 영국의 연출가 팀 크라우치가 만든 연극으로, 두산아트센터의 ‘경계인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공연중이다. 28일까지. (02)708-5001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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