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키친’
레스토랑 주방의 분주한 모습은 사실 그리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아니다. 숱한 외국 영화들과 <헬’스 키친>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부터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파스타>까지, 고성이 오가는 살벌한 주방은 제법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영화나 텔레비전 방송보다 시공간의 제약이 큰 연극 무대로 주방을 옮긴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쪽 벽을 차지하는 오븐과 냉장고, 육류, 생선, 채소 등 음식 종류의 숫자만큼 들어선 조리대, 위험한 조리 도구들을 한 공간에 올려 주방을 재현하기란 쉽지 않다. 국립극단의 신작 연극 <키친>은 복잡한 주방을 무대 삼아 그곳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담았다. 평면의 스크린에서만 보던, 실제로 들어가본 적 없는 레스토랑 뒤편의 살아 움직이는 풍경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0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중인 <키친>은 1959년 영국에서 초연된 영국 극작가 아널드 웨스커의 원작을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티볼리’라는 큰 레스토랑의 주방이 배경으로 꼼꼼하게 재현된 주방에 스무명이 넘는 배우들이 등장해 요리사, 웨이트리스 등을 연기한다. 등장인물들은 영국 말고도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2차 대전 이후 얼마간 시간이 지났고, 아직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 상태다. ‘진짜 나치라도 되는 줄 알았냐’, ‘독일놈들’ 같은 대사가 종종 등장하고 인물들은 출신 나라별로 뭉치거나 미워한다. 2막으로 이뤄진 연극에서 1막과 2막은 각각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며 분주한 모습을 보여준다.
풍부한 볼거리는 인상적이지만, 동시에 관객에게 연극의 의미를 전달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특히 1막에서는 시공간에 대한 설명 없이 바쁜 호흡으로 일관하고 있어 연극이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혈질의 독일 청년 페터와, 그의 연인인 모니크가 중심이 된 드라마도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관객에게 생각할 틈을 주는 호흡 조절과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6월1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02)3279-2233.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