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모자>
레드퍼드가 연출한 영화 ‘음모자’
집단적 분노에 희생된 개인 그려
집단적 분노에 희생된 개인 그려
미국 대통령이 죽었다. 암살이다. 주범은 도주 끝에 사살됐고 공범들은 체포됐다.
이들 대부분은 확실히 암살에 가담한 게 틀림없다. 단 한 명만 빼고. 암살 공모를 위한 장소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여관 주인 메리 서랏(로빈 라이트). 주범의 오른팔로 의심되는 청년의 엄마다. 아들은 암살 직후 종적을 감췄다. 변호사(제임스 매커보이)는 “죄명을 찾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메리 서랏은 자신이 “남부 출신이고, 가톨릭 교도이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엄마”이지만 “암살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배우 출신 로버트 레드퍼드 감독의 새 영화 <음모자>(사진)는 누구나 아는 링컨 대통령의 암살을 소재로 택하면서 대개는 잘 모르는 암살 이후의 시간에 주목한다. 링컨 대통령의 암살범으로 지목된 8명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메리 서랏에 대한 재판을 다룬 이 영화는 집단적인 슬픔과 분노, 그리고 이를 가라앉히려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사라진 한 개인을 되살린다. 122분짜리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1865년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장면이 나오고, 20분이 지나면 주범 부스는 총살당한다. 영화가 관심을 둔 건 암살 이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의 막바지, 불안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갑자기 죽었다. 정치인들은 신속히 안정을 찾으려 한다. 충격과 애도의 분위기 속에 “암살 혐의자일지라도 변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와 “하루빨리 범인들을 ‘처리’하고 비극을 잊어야 한다”는 두개의 주장이 대립할 때 이기는 건 뒤쪽이다. “전시 중에 법은 침묵한다”는 말대로,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재판은 배심원 없는 군사재판으로 진행된다. 영화는 재판에서 정부 쪽 증인으로 나오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재판정 밖에서 갖은 회유와 거짓 증언 등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열어둔다.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재판은 형식적인 의례일 뿐이다. 이 문제투성이 재판이 끝나고 나서야 전시에도 시민은 배심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정해진다.
무고한 인물로 그려지는 메리 서랏은 적극적으로 자기를 방어하지 않는다. 아들의 수상쩍은 행동을 말해 본인의 혐의를 벗는 대신 그는 차라리 침묵을 택한다. 메리 서랏의 재판 이후 1년 4개월 만에 나타난 아들 존 서랏은 결국 북부와 남부의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재판 결과 풀려난다. 결과적으로 메리 서랏의 희생이 아들을 구한 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아들을 살리기 위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메리 서랏이 설사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더라도 ‘슬픔을 빨리 끝내기 위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재판의 구조와 집단적 분노에서 벗어날 순 없었을 테다. 영화는 집단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의 이야기다.
2008년 개봉한 <어톤먼트>(2007)로 국내 관객에게 친숙해진 영국 출신 배우 제임스 매커보이가 변호사 프레더릭 에이컨 역을 맡았다. 30일 개봉.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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