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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광주’는 죽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등록 2011-07-04 19:52

영국 에든버러 참가작 ‘자스민 광주’
영국 에든버러 참가작 ‘자스민 광주’
리뷰 영국 에든버러 참가작 ‘자스민 광주’
5월항쟁-재스민혁명 희생자
진도 씻김굿 등으로 넋 위로
무거운 가방을 든 남자가 작은 빈소가 차려진 무대 위에 비틀거리며 등장한다. 부근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그의 존재를 눈치채는 이는 없다. 이 남자가 나지막하게 외친다.

“나는 광주다. 내 이름은 광주다. 나는 죽었어도 당신들이 보는 바와 같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순간 그의 존재를 알아본 무녀가 등장해 징 치며 초혼가를 부르더니, 삼현육각 장단에 맞춰 진도 씻김굿이 벌어진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1980년 5월 광주항쟁 희생자들 영정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이윽고 망자의 가방이 펼쳐지고 5월 광주의 기억들이 튀어나와 최근 시민항쟁이 벌어진 아프리카 튀니지의 현실과 뒤섞인다. 화면에는 계엄군의 광주 진압과 이때 죽은 광주 시민, 튀니지 민주혁명의 기폭제가 됐던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 장면 등이 타악주자들의 급박한 화고난타 리듬에 뒤섞이며 흘러간다.

오는 8월13~19일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참가할 ‘광주 브랜드공연’ <자스민 광주>가 지난 2~3일 저녁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첫선을 보였다. 광주의 도시브랜드축제 ‘페스티벌 오! 광주’ 개막작으로 초연된 이 작품은 5월 광주 정신과 올해 초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프리카·중동의 ‘재스민 혁명’을 무용총체극으로 엮었다. 진도 씻김굿과 사설, 기록영상 등을 바탕으로 광주 영령과 재스민 혁명의 넋을 위로하는 무대 굿으로 꾸며진 무대였다. 극단 갯돌 상임연출가 손재오씨가 총연출을 맡고, 음악감독인 원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곡을 짓고 다듬었다.

초연 첫날인 2일 강운태 광주시장과 스와드 게볼라우이 주한 튀니지 대사 등 주요 인사와 시민 800여명이 대극장을 가득 메웠다. 공연은 시종일관 숙연한 분위기였다. 출연자들이 떠난 영령들을 위해 길 닦음을 하는 장면 등에서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주인공 망자 역의 마임 배우 이두성씨는 “고2 때 광주를 겪었는데 31년 만에 공연자가 되어 이런 기회를 만난 것이 무척 기뻤다”며 “광주 영령들을 만나 우리가 깨끗이 씻어드릴 수는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게볼라우이 대사도 “80년 광주와 현재 튀니지는 매우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자스민 광주>는 5월 광주라는 다소 부담스런 소재를 언어의 벽을 넘는 비언어 무용극이란 장르로 풀어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5월 광주를 세계가 주목했던 재스민 혁명과 연계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그러나 극 전체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한스럽고 어두워 자칫 공연 자체의 흥미를 잃게 할 우려가 엿보인다. 한국 전통연희의 묘미인 슬픔과 기쁨의 공존, 해학의 여유가 배제되어 긴장만 있고 이완은 없었다. 5월 항쟁 주요 장면들과 영령들 사진, 튀니지의 스틸 사진을 나열한 데 그친 영상작업도 신선하지 못했다. 8월 에든버러 공연을 앞두고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아 보인다.

광주/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광주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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