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 지산포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찾은 음악팬들이 7월30일 저녁 록 밴드 자우림의 공연에 열광하고 있다. 이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여름이다. 방바닥을 이리저리 뒹굴기보다, 바깥으로 조금만 눈길을 돌려보라. 갖가지 색깔로 아롱진 공연예술 축제는 폭우에도 멈추지 않는다. 지난 주말 <한겨레> 대중문화팀 기자들은 경기도 이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과 경남의 거창국제연극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현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빗줄기 속에서도 재미와 감동이 물결쳤던 축제 놀이판 속으로 들어가보았다. 문화야 놀자, 놀자꾸나!
올해도 참 징하게 놀았네, 그려. 지난달 29~31일 경기도 이천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서 열린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다녀오고 나서 아직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니까 그러네. 주최 쪽은 사흘간 연인원 9만2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하더군. 가만, 학선이 너도 스치다 본 것 같은데, 어떤 무대가 가장 좋았니?
‘락’이건 ‘록’이건 UV가 최고
매년 록 페스티벌을 즐겨왔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그리 흥이 나지 않았어. 나이 탓인지 체력도 달리고 해서 돗자리에 누워 귀로만 음악을 들었어.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무대가 나를 방방 뜨게 만든 거 알아?
개그맨 유세윤과 음악인 뮤지가 결성한 듀오 유브이(UV)가 둘쨋날 밤 11시 넘어 특별공연을 했는데 인기가 어마어마하더라고. 주최 쪽에선 2만명이 몰렸다고 하던데, 과장이 좀 섞였다 해도 공연장 뒤 수영장과 건물에까지 사람이 들어찼던 걸 생각하면 정말 많은 인파였어. 사실 유브이 출연에 대해 말들이 좀 많았거든. 디제이 디오시, 김완선, 아이돌 그룹 투에이엠(2AM) 출신 정진운 밴드 등의 출연을 두고 록 페스티벌 정체성이 흔들린다면서 말이야. 이를 의식해선지 준비 많이 한 것 같더라구.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그간 유브이 음악이 흑인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면, 이번 무대에서만큼은 화끈한 로커로 변신했어.
‘떼창’이란 말 알지? 합창이라 하기엔 미안한, 근본 없이 함께 따라 부르는 거. 난 이번 유브이 공연에서 떼창의 끝을 본 것 같아. ‘이태원 프리덤’ 같은 자신들 노래 말고도 라디오헤드의 ‘크립’, 비틀스의 ‘헤이 주드’,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 같은 노래들을 부르는데, 관객들 떼창 소리가 이천터미널까지는 들릴 것 같더라구. 그 순간만큼은, 지금 라디오헤드가 여기 와서 ‘크립’을 부른다 해도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록이든 락이든 롹이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지난해 지산에서 가장 즐거웠던 공연은 영국에서 온 댄스(!) 팀 펫숍보이스였고, 올해는 유브이였어.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힘. 그게 록 페스티벌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유브이는 최고의 ‘록스타’였어.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맞아. 나도 유브이 무대가 최고였어. 유브이가 마이클 잭슨의 ‘비트 잇’ 노랫말을 이렇게 바꿔서 부르는 대목에선 배꼽이 빠졌다니까. “지산에 롸커들이 없다는데 그중에 유브이도 속했나. 한달 전부터 연습 열심히 했는데 왜 그래!” 유브이 짱! 근데 윤하 넌 낮에 도통 안 보이더만. 지산에 오긴 왔던 거야? 진짜는 해 지고 시작되지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이젠 너무 진부해진 문장이긴 하지만 어떡해. 저 말이 딱인걸. 록 페스티벌 간다면 이렇게 더운 날씨에 어떻게 하루 종일 밖에 있냐, 더운데 술이 목구멍에 들어가냐, 다 촌스러운 얘기 아니니? 록 페스티벌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해가 진 뒤라구. 사실 올해 라인업 말들 많았잖아. 지난해보다 부실한 거 아니냐구. 그거 헤드라이너 이름만 체크하는, 놀 줄 모르는 애들이나 하는 소리야. 난 올해 자정 이후 라인업이 마음에 들어서 낮에는 숙소에서 잠 보충하고 저녁에 뛰쳐나가는 생활을 사흘 내내 했다니까.
올해 신설된,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심야무대 ‘하이프 스테이지’가 특히 좋더라. 센스 만점 유브이부터 텔레파시, 칵스까지, 거기서 정신줄 놓은 애들 내가 본 것만도 몇백명은 될걸? 네가 보고 싶어하던 김완선 언니 무대도 엄청 멋있었어. 개인적으로 제일 쏠쏠하게 논 건 ‘오픈 스테이지’였어. 몽구스에서 야광토끼, 글렌체크까지 요즘 제일 ‘핫’한 젊은 밴드들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죽을 것처럼 피곤해도 좀처럼 자리를 못 뜨겠더라고. 페스티벌이라는 게 유명 밴드 공연 보는 것도 목표지만, 새로운 밴드 알아가는 것도 수지맞는 장사잖니.
지난해 우리 재밌게 봤던 커버밴드 무대는 올해도 좋더라. 특히 김추자 트리뷰트 밴드 ‘춤추자’, 이 밴드 정말 최고야. 나중에 어디서 공연한다면 꼭 같이 찾아가보자. 암튼 중간에 피곤하면 야외 스크린에서 상영하던 음악영화 보면서 잠깐 졸기도 하고, 정말 알뜰하게 사흘 밤 보냈어. 응? 토요일 밤 얘기가 왜 이렇게 부실하냐고? 아, 그게… 사실 그날 밤 만취해서 기억이 잘 안 나, 흑.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그랬군. 역시 ‘밤의 여왕’다워. 김추자 트리뷰트 밴드 ‘춤추자’ 공연은 담에 기회 되면 꼭 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민희는 공연보다 관객들 구경을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던데, 뭐가 그렇게 재밌었어?
물갈퀴·환자복…‘패션 해방구’
응, 비가 많이 왔잖아. 무수한 레인부츠와 맨발 사이에서 5㎝ 넘는 구두로 빗물 웅덩이를 건너는 아가씨를 봤어. 손만 스쳐도 얼룩질 것 같은 흰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소녀였어. 걔한테 불편하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앉아서 공연 감상만 할 거래. 아이돌처럼 맞춤옷을 준비한 무리들도 있었어. 원더걸스처럼 복고풍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온 네명의 소녀들이 그랬지. 그렇게 신경써서 입는다는 건 축제 전부터 흥분해 있었다는 뜻일 거야. 의상이 곧 출신을 일러주기도 했어. ‘거창 사과’라고 프린트한 티셔츠를 입은 남자애들한테 사진 좀 찍겠다고 했더니 사과즙을 줬어.
‘깨는’ 복장도 많았어. 이 방면의 달인은 단연 외국인이지. 물갈퀴를 온몸에 붙이고 서성이는 한 외국 청년에게 패션 콘셉트를 설명해달라 했더니 “크레이지 가이”래. 위에는 경찰 제복을 입고 아래는 팬티만 두른 남자도 있었는데, 또다른 ‘크레이지 가이’ 같기도 하고, 공권력에 대한 즐거운 조롱처럼 보이기도 했어.
외국인들만 과감한 건 아니야. 어느 페스티벌에나 망사 스타킹에 스모키 화장을 한 위협적인 언니들이 있어. 아픈 것 같진 않은데 환자복을 입고 나타나는 사람도 꼭 있고. 의도야 알 수 없지만, 의미를 찾는다면 ‘해방’이겠지? 평소 못 했던 걸 귀엽게 저지르는 거지. 그에 비하면 내 옷차림은 평범 그 자체. 내년엔 나도 머리에 꽃이라도 하나 달고 가볼까?
이민희 대중음악평론가
머리에 꽃이라, 우드스톡 페스티벌 콘셉트로구먼. 아닌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 콘셉트인가? 암튼 기대된다. 참, 정위 너는 임신 6개월이라 올해는 건너뛸 줄 알았는데?
‘록 태교’에 태동도 격렬했지
무슨 소리! 내게 록 페스티벌은 놓칠 수 없는 연례행사야. 임신했다고 포기하는 건 너무 억울해. 아니, 아이를 가졌기 때문에 더 가야만 했어. 우리 아이에게 ‘록 태교’를 해주고 싶었으니까. 난 아이가 그냥 의사, 변호사가 되기보다는 기타를 치는 의사, 밴드를 하는 변호사이면 더 멋질 것 같아. 그래도 걱정은 되더라고. 그래서 준비했어. ‘임산부임당, 태아를 위해 흡연, 개슬램, 욕은 저짝에서 해주세요’라고 쓴 명찰을 달았어. 사람들 이목을 끌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반응이 꽤 좋더군. 푸드존에서 장사하는 사장님은 ‘록 베이비’라며 물도 공짜로 주셨어. 애를 미끼로 삼고 싶진 않지만, 내년에는 ‘펑크 베이비’처럼 옷을 입혀서 데려와야지. 그럼 닭꼬치라도 하나 얻어먹을 수 있을 거야. 호호~
둘쨋날 헤드라이너 아크틱 몽키스의 첫곡 ‘라이브러리 픽처스’가 나오자마자 엄마는 발동이 걸려 임산부임을 망각한 채 소심한 점핑을 시도했어. 녀석도 격렬하게 발길질을 해대더군. 지도 좋아서 그런 게지. 아니, 아기 생각은 안 하고 날뛰는 엄마에 대한 반항의 의미인가? 암튼 난 배를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해줬어. “얘야, 이거란다. 이게 바로 젊음이란다. 난 네가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세상을 끌어안는 큰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오늘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너에게 이 낭만을 전해주고 싶었던 거란다. 엄마의 깊은 뜻을 알겠니?”
김정위 대중음악평론가
그야말로 ‘로큰롤 베이비’로구먼. 아이가 정말 멋지게 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역시나 다들 신나게 놀았구나. 우리 이제 무슨 낙으로 남은 여름을 나지? 아, 또 있지! 5~7일 인천 드림파크에서 펼쳐지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남았구나. 콘, 팅팅스 공연은 꼭 보고 말 거야. 그날을 위해 체력비축에 들어가야겠다. 모두들 거기서 다시 만나자구!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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