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59) 전 청와대 경제수석
북한 어린이돕기에 사진 기증한 박병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
국내·미국서 찍은 희귀꽃사진
소량 인화 대신 USB에 판매
‘B형간염’ 북한 어린이에 기부
국내·미국서 찍은 희귀꽃사진
소량 인화 대신 USB에 판매
‘B형간염’ 북한 어린이에 기부
박병원(사진·59)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유에스비(USB) 메모리 카드를 선물한다. 그가 최근 2~3년 사이 미국 서부 사막과 해안지역에서 찍은 야생화 사진 2000장과 우리나라 대표적인 꽃 300컷이 들어 있다. 6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금산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사단법인 봄의 북한 어린이 돕기 자선전시회 ‘꽃이 희망이다’전에 기증하는 작품들이다.
“내 얼굴 말고, 꽃사진을 많이 소개해주세요. 남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함께 공유하려는 뜻이니 멋진 사진 작품을 기대하지는 마세요.”
<한겨레>를 찾아온 3일에도 그는 명함 대신 메모리 카드부터 내밀었다. 편안한 캐주얼에 베레모와 배낭을 메고 다니는 그의 차림에는 한때 한국 경제정책을 책임졌던 최고위급 금융관료의 딱딱한 권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배낭에서 노트북을 꺼내더니 사진을 하나하나 클릭하며 꽃 이름과 사연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이스플랜트라고 지난해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가에서 찍은 건데 두툼한 이파리가 마치 서리가 내려앉거나 설탕을 뿌린 젤리처럼 보이죠? 이건 스노베리라는 열매인데 방울마다 색깔이 다 다른 게 우리 청자 같은 비취색도 있어요. 오렌지꽃 본 적 있나요? 소설에서만 읽었던 아네모네의 솜털 꽃씨도 볼래요?…”
‘진짜 신기하죠?’ ‘처음 봤죠?’를 연발하는 그의 꽃사진 이야기는 다음 약속만 없다면 끝없이 이어질 듯 막힘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빗방울 머금은 아몬드꽃을 보세요. 꽃보다 화사한 흰 꽃송이도 아름답지만 비를 맞아 눈처럼 떨어져 쌓인 낙화 사진은 아무 때나 찍을 수 없거든요.”
그는 10여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뮤지엄에서 아몬드꽃 그림을 본 순간부터 실물을 보고자 찾아다녔단다. 그 무렵 마침 등장한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본격적으로 사진 찍기에 나선 그의 꽃사진 컬렉션은 어느새 수십만장으로 쌓였다.
사실 그는 일찍부터 금융가에서 ‘걸어다니는 식물도감’으로 불렸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행정고시 합격, 경제기획원 입문, 재경부 국장과 차관,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2009년 초 청와대를 떠나기까지 35년간 남달리 바쁜 공직 인생을 살아온 그가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전문가 수준의 마니아가 될 수 있었을까.
“국외 출장 때도 짬이 나면 식물원이나 야생화 트레킹을 했어요. 한번은 사막과 초원이 대부분인 우즈베키스탄에서도 골프장 대신 야생화지대를 안내해달라고 했더니 놀라더군요.” 업무를 위해 익힌 영어와 일본어는 기본이고 프랑스어·이탈리아어·중국어·스페인어까지 구사하는 어학 실력과 출장이나 국외 근무 때 틈틈이 즐긴 미술관 순례 경험은 이제 “비정규직(사외이사)” 자연인으로서 지구촌 구석구석의 식물을 탐사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그림 취미 덕분에 인연을 맺은 갤러리 쪽의 권유로 사진을 선보일 용기를 냈다”는 그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거나, 일반인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꽃들을 통해 자연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좀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그가 고안해낸 방식은 경제전문가답게 ‘박리다매’다. 애초 50장만 사진으로 인화해 팔려던 계획을 바꿔 전자액자로 두고두고 즐기도록 ‘꽃사진 전부를 유에스비에 저장해 판매하는 것이다.
9월4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판매 수익금은 독일 카리타스와 함께하는 북한지원단체인 봄(이사장 김원)을 통해 북한 어린이 B형 간염백신사업에 쓰인다. 김종학·서정희·정태섭·최영돈·성영록·이은채 작가의 꽃 그림과 박경란 작가의 꽃 주제 도예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031)957-6320.
글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비에 젖어 떨어진 아몬드 꽃잎
식용 채소인 아이스플랜트
캘리포니아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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