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만난 ‘백년몽원’전 참여 작가와 기획자들이 스튜디오 전시장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왼쪽부터 강승희, 오윤석, 차동훈, 정재욱, 한경우, 박은영, 문명기, 장재록, 권순관(이상 참여작가), 김기라, 이진명(공동 기획자).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그룹전 ‘백년몽원’
‘저항적 비평’ 지향 국내외 작가 24명 결집
주술세계·서구문명사 등 깃든 작품 선봬
‘저항적 비평’ 지향 국내외 작가 24명 결집
주술세계·서구문명사 등 깃든 작품 선봬
지난 100년간 세계 미술의 역사는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미국 미술관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어 확산된 역사였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이래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이 득세하면서 실험 정신은 퇴색하고 보수적인 상업주의가 활개쳤다. 작가들 또한 자기 브랜드를 공표하고 지명도를 높이는 상업주의 전략에 치중해왔다. 일찌감치 이런 흐름을 내다본 19세기 영국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미국의 발견은 예술 종말의 시작이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 미술은 지난 100년간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구가 강요한 문화 식민주의를 좇아 바동대던 것이 아시아 근현대미술의 100년 신화였다. 일본이 물꼬를 트자 한국과 중국이 뒤를 이었으며 현재는 동남아가 중병에 걸린 서구 미술을 좇고 있다.
국내·외 30대 젊은 작가들이 서구 중심 미술 역사를 반성하고 앞으로 우리의 길을 찾는 100년을 준비하자고 뜻을 모았다. 22일부터 9월4일까지 서울 상암동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리는 그룹전 ‘백년몽원’은 이들의 의기투합을 보여주는 전시다. ‘백년몽원’은 조선 초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렸다는 <몽유도원도>의 ‘몽원’과 한 개인의 일생의 시간을 상징하는 ‘백년’을 합성한 단어이다.
이 불온한 실험전에는 국내외 30대 작가 24명이 나섰다. 강승희, 권순관, 문명기, 박은영, 안두진, 오윤석, 유비호, 유승호, 이상용, 이원호, 이창훈, 장석준, 장종완, 장재록, 정재욱, 차동훈, 한경우 등 국내 작가 17명과 고르카 모하메드(스페인), 윱 오베르톰(네덜란드), 발두어 부르비츠(독일), 요 오카다(일본), 윌 볼턴(영국) 등 외국 작가 7명이 손을 잡았다. 이들은 모두 1970~80년대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극적으로 겪은 세대이다. “상업주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저항적 비평주의’를 지향하는 작가들을 엄선했다”는 게 공동기획자인 김기라 작가의 설명이다.
전시장에서 강승희 작가는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사유를 담은 이색 병풍 그림 2점을 내놓는다. 영국에서 활동해온 그의 작품 <나는 우리가 더 이상 원더랜드에 있지 않는 것 같아요>는 현대문명의 모순을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빗대어 자수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권순관 작가는 서커스 장면을 연출한 사진 작품을 통해 현실과 꿈이 뒤범벅된 한국 사회의 아찔한 경계를 패러독스로 풀었다. 박은영 작가는 한국 도시문명의 기괴함을 버려진 폐품을 이용한 설치미술로 보여준다.
외국 작가들은 주로 영미 위주의 현대 미술 흐름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제시한다. 윌 볼턴의 <비가>는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이 만든 영욕의 역사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요 오카다는 ‘불타는 집’이란 불교적 가르침을 회화에 반영해 동양적 가치관을 전면에 내세운다. 발두어 부르비츠는 인간사를 원숭이의 역사와 동일시하는 희화화의 방법으로 독일 문명사를 비판한다. 덧없는 20세기에 대한 성찰이 두드러지는 작업들이다.
‘백년몽원’을 공동기획한 이진명 큐레이터는 “상업성이 모든 가치를 주도하는 시대에 작가의 의식이 또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1940년대 파리나 1960년대 뉴욕, 1990년대 런던, 2000년대 라이프치히처럼 미래에 미술 담론의 장이 되기를 기원하는 전시”라고도 했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생태환경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난지도에서 한국 미술의 새로운 싹을 본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백년몽원’전에 나온 권순관씨의 2009년 작품 <사건의 전체 그림-매달린 늙은 여인>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제공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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