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일(51) 대표
국내 첫 그래미상 후보 오른 김영일 ‘악당이반’ 대표
전세 살며 거액 투자한 노력결실
국악인 촬영하다 우리소리 매료
양동마을 관가정에서 야외 녹음
전세 살며 거액 투자한 노력결실
국악인 촬영하다 우리소리 매료
양동마을 관가정에서 야외 녹음
“4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 전통 가곡이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은 한 나라 문화의 진실성을 전달했다는 뜻이겠죠. 우리 가곡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음악이란 사실도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국내 하나뿐인 국악 전문 음반사인 악당이반의 김영일(51·사진) 대표는 “대학 합격 이후 어디에 붙었다는 기쁨을 삼십년 만에 느껴보고 있다”며 웃었다. 내년 열리는 ‘제54회 그래미상’의 ‘서라운드 사운드’와 ‘월드뮤직’부문에 국악 음반 <정가악회 풍류 Ⅲ-가곡>이 후보로 오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는 국악계는 물론 나라 안팎의 주목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대중음악까지 포함해서 국내 발매 음반이 세계 최고 권위의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경사다.
<정가악회…> 음반은 전통 가곡 ‘태평가’와 ‘편수대엽’ 등 9곡을 젊은 여류 명창 김윤수씨의 노래와 국악 실내악단 ‘정가악회’의 연주로 담았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북 경주 양동마을 관가정의 대청마루에서 가곡들을 녹음했다는 것이 뜻깊다. “한옥은 우리 음악이 개발되고 전승된 헐렁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맞춤형 스튜디오지요. 녹음을 해보면, 마당 넓은 집에서는 판소리가, 대청 넓은 집에서는 가곡과 같은 음악이, 오붓한 느낌의 사랑채나 안채 방에서는 산조 독주 등이 기가 막히게 잘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국악음반이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데는 음반과 음원에 부여되는 국제저작권 번호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한국은 해적판 음반이 난립하는 형편 때문에 인터내셔널 스탠다드 레코딩 코드(ISRC)협회가 발급하는 저작권 번호를 받을 수 없었다. “ISRC 인증번호를 받기 위해 지난 5년간 눈물겨운 노력을 벌인” 끝에 특별 인증번호를 받아낸 것이다.
“문화부와 저작권협회의 도움이 아쉬워요. 일제 강점기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처럼 나라는 있는데 국가번호가 없으니 아무리 좋은 음반을 만들어도 세계시장에 가면 해적음원이 되고 말죠. 세계시장에 진출하려고 남의 나라 국가번호를 달고 나가는 게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는 국내 음반계의 현실입니다.”
그는 인물 사진 한 장에 천만원대를 부르는 전직 대통령·재벌 회장의 고가 초상사진을 찍어온 사진가이기도 하다. 1996년 사진 촬영을 하러간 한 젊은 국악인이 부르는 단가에 매료된 그는 이후 8년 동안 우리 소리를 찾아 300여개의 녹음원본을 만들었다. 2005년 악당이반을 설립한 그는 국악 연주 전용 한옥 공연장을 짓고, 청소년 국악도들에게 악기를 지원하는 등 줄잡아 40억원의 사재를 국악에 쏟아 넣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집도 없이 전세에 산다.
“누가 국악에 대해 물으면 저는 ‘이땅에서 국악은 국민이 모르는 음악’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대답을 하는 저 역시 마음이 아픕니다. 일제의 말살 정책과 서양문화 신봉사상, 한국전쟁 등으로 단절된 우리 문화의 시간들을 이제라도 국악인, 국민 모두 힘써 복원하고 계승·발전시켜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는 “이 땅에 있어야 할 음악문화 담기와 전달하기의 큰 꿈을 이뤄보겠다”고 힘줘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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