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박불똥(55)씨
‘형이하 악’전 여는 화가 박불똥씨
사진 콜라쥬 66점, 관훈갤러리서
이소선씨 장례·용산참사 등 담아
“미술계 사회적 책임 무관심” 비판
사진 콜라쥬 66점, 관훈갤러리서
이소선씨 장례·용산참사 등 담아
“미술계 사회적 책임 무관심” 비판
그의 전시회는 항상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만든다. 80년대 서슬퍼렀던 군사독재 시절에도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 대한 신랄한 풍자화를 그려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 5월, 10년 만에 연 개인전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 ‘호치키스’를 찍은 그림을 내걸었다. 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박불똥(55·사진)씨가 12일부터 서울 관훈동 관훈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고 있다. ‘형이하 악’이라는 전시회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미술은 가시의 것, 즉 형태에 관한 것이지만 흔히들 미술작품에는 ‘형이상’의 어떤 것이 담겨 있다고 믿거나 주장하죠. 따라서 그런 ‘착각’을 의도하지 않는 작가나 작업은 자칫 ‘형이하’의 수준 낮은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심지어 ‘선’이 아니라 ‘악’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저의 작업이 ‘형이하’이고 ‘악’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그는 “바로 그런 미술계의 ‘허위의식’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전시가 제목만 거창할 뿐 그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나 사회와 관계를 맺는 것은 무력하고 허망했다”며 ‘형이상’에 치우친 미술세태를 꼬집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서울 인사동에서 집과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마석을 오가는 동선 위의 시간과 공간을 담은 작품 66점을 내놓았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한 사진 콜라쥬 작품이다. 최근 세상을 떠난 고 이소선씨의 장례 모습, 고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당시 봉화마을의 오전과 수원연화장에서의 운구 장면, 촛불 정국 때 광화문에 세워진 ‘명박산성’ 등 지난 5년간 한국사회의 격변 현장을 꼼꼼히 담았다. 또 작업실 인근에 있는 모란공원의 민주열사 묘역에 묻혀있는 박종철 열사, 노동자 시인 조영관 열사 묘비도 녹아넣었다.
그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모란공원의 민주열사 묘역을 찾았다가 묘비에 관리비 미납 경고장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국립묘지에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은 인물들이 거창하게 묻혀있는데 민주화를 위해 한 목숨을 바치고 겨우 모란공원에 쉼터를 마련한 열사들에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는 안타까움이 들었어요. 현실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요구 사이의 마찰을 어떻게 견딜 수 있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80년대 민중미술의 스타에게 ‘민중미술’의 시효를 물었다. “민중은 철지난 유행어가 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게다가 ‘그림은 그림일 뿐’이라는 각성이 무성해진 현실을 생각하면 저는 이번 작업에서 외람되지만 제 스스로 위로와 격려를 얻습니다. ‘형이하 악’에는 최소한 뜬 구름잡는 소리는 없기 때문이죠.”
글·사진/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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