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작 <그림 형제의 여섯 편의 동화를 위한 삽화> 중 ‘달려드는 검은 고양이’(1979), 에칭과 애쿼틴트
ⓒ영국문화원 컬렉션
서울대 미술관서 11월27일까지
영국 팝아트 미술의 대가 데이비드 호크니(74)는 ‘수영장’ 시리즈로 이름 높은 인기 화가이자 사진작가다. 일러스트, 무대 디자인 등 미술 세부 장르들을 넘나들며 활약해온 그의 개인전이 국내 처음 열리고 있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신림동 서울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크니 초대전 ‘네 개의 판화 포트폴리오 1961-1977’. <탕아의 행적>(1961-1963), <푸른 기타>(1976-77) 등 60~70년대 제작한 4개 판화 모음집을 모은 전시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의 초기 20년간 작품 활동에서 부각된 문학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특히 60년대 초반 세계 미술 주류였던 미국 추상표현주의 사조로부터 풍경과 정물, 인물의 사실적 묘사를 중시하는 유럽 구상주의 전통을 나름 지키려 했던 청년기 작가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는 “그림 위에 글자를 넣는다는 것은 구상적 표현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보는 이가 즉시 읽을 수 있는 조금 더 인간적인 요소”라고 밝히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돌아온 탕아’라는 성서 모티브에 영감을 얻어 16개 동판으로 만든 연작 <탕아의 행적>. 레이크 월이란 중산층 시민이 상속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원래 18~19세기 영국 중산층의 도덕적 해이를 꾸짖는 교훈을 담았다. 호크니는 18세기 영국 작가 월리엄 호가스(1697~1764)가 만든 같은 제목의 판화집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국 생활을 자서전적으로 풀어 넣었다. 전시를 준비한 김행지 선임 큐레이터는 “호크니가 1962년 영국 왕립미술학교 재학 시절 미국에 건너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작품을 팔면서 한꺼번에 부와 명예를 얻었고, 그 뒤 게이바를 전전하면서 탕진하는 과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귀띔했다.
이밖에 독일의 그림 형제가 수집한 옛 동화들 가운데 ‘푼데포겔’, ‘라푼젤’, ‘두려움을 배우기 위해 가출한 소년’ 등 여섯 개 이야기를 골라 동판화로 찍은 <그림 형제의 여섯 편의 동화를 위한 삽화>도 작가의 자유스러운 상상력을 엿보게 한다. <푸른 기타>에는 큐비즘(입체파) 요소와 피카소가 즐겨 사용했던 ‘슈가 리프트’ 기법(설탕과 물에 잘 녹는 재료를 섞어 붓으로 작업하는 것) 등이 어우러져 그가 평생 존경한 스페인 거장에 대한 경의를 느낄 수 있다. 11월27일까지. (02)880-9407. 정상영 기자, 도판 영국문화원 컬렉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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