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밴드 톡식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한국방송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의 출연진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대중음악 지형이 바뀐다
국외 활동 나선 아이돌 빈자리에 통기타 발라드 등 인기
음원 시장 ‘발라드’ 수직 상승…인디, 지난해 견줘 3배 늘어
국외 활동 나선 아이돌 빈자리에 통기타 발라드 등 인기
음원 시장 ‘발라드’ 수직 상승…인디, 지난해 견줘 3배 늘어
지난 9일 오후 서울 신당동 ‘뮤지컬하우스 호연재’에 40~50대 중장년층 관객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통기타 멘 여성 가수 강지민씨가 노래를 시작하자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 콘서트는 ‘강지민 2집 앨범 발표 기념회’. 강지민 팬클럽 ‘강사모’(cafe.daum.net/jiminifanclub) 회원들이 돈을 거둬 자발적으로 마련했다.
최근 강씨는 인터넷 사이트의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등 7080세대 노래를 그가 부르는 동영상이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 퍼지면서 중장년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인터넷 팬클럽 회원만 1만2000명을 넘어섰다. 대학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팬클럽 모임지기 ‘설감’(별명)은 “아이돌 음악 홍수 속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중장년층이 신선하면서도 정감 가는 강지민의 노래에 열광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5일 밤 열린 <한국방송>(KBS) 2텔레비전의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 결승전도 여느 아이돌 공연장 못지않게 뜨거웠다. 방청객들은 응원 밴드 이름을 담은 손팻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고, 우승팀 톡식 인터뷰에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였다.
국내 대중음악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10년 넘게 군림해온 아이돌 음악의 위세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주춤해졌다. 그 사이 가창력 위주의 발라드, 포크, 록 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이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초 ‘세시봉 열풍’이나 ‘나가수(나는 가수다) 신드롬’이 대표적이다. 인디밴드 ‘십센치’는 방송 출연도 하기 전에 클럽·길거리 공연과 입소문만으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 스타가 됐다.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도 변화가 느껴진다. 음원 사이트 엠넷의 10월 첫주 차트 100위권 곡들의 갈래별 분포를 보면, 발라드(45%), 댄스(32%), 랩·힙합(11%), 록(6%) 차례다. 2009년 같은 기간에는 랩·힙합(37%), 댄스(33%), 발라드(17%) 차례였다. 아이돌 음악이 주로 속한 댄스, 랩·힙합 비율이 2년 새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인디음악 전문 온·오프 유통 회사인 미러볼뮤직의 매출 추이를 보면, 재작년보다 지난해 매출이 2배로 늘었고,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3배로 늘 것으로 추정된다.
대중음악 주류는 여전히 아이돌이다. 하지만 요사이는 원더걸스의 ‘텔 미’(2007년)나 소녀시대의 ‘지’(2009년) 같은, 남녀노소가 흥얼거리는 ‘메가히트곡’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새롭게 뜨는 신인 아이돌도 드물다. 상당수 아이돌 가수들은 세계적인 ‘케이팝 열풍’을 타고 일본 등 외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학선씨는 “(최근의 대중음악 흐름은) 안으로는 대중음악 시장의 다양화 측면에서, 밖으로는 한류를 통한 대중음악 산업 규모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SNS 타고 다양한 장르 음악 ‘볼륨 업’ 아이돌 음악에 피로 느낀 대중
인디 ‘킬러 콘텐츠’로 눈돌려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한국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는 올가을 대중음악 흐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온 진원지다. <톱밴드> 출연 밴드가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면 아이돌 음악을 즐기던 젊은 관객은 물론 등산복 차림 중장년층까지 몰려든다. 팬들은 직접 록 축제 기획에도 나섰다. 포크 바람을 몰고 온 ‘쎄시봉 열풍’, 잊혀진 실력파 가수를 다시 불러낸 ‘나가수(나는 가수다) 신드롬’에 뒤이은 열풍이다. 아이돌 아닌 새 음악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없었다면 이런 움직임까지 이어지진 못했을 것이다.
인디 음악의 상승세 또한 뚜렷해 보인다.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십센치 등의 앨범은 요사이 수만장씩 팔려나간다. 웬만한 주류 가수들보다 높은 판매량이다.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는 “인디 음악에서 이른바 ‘킬러 콘텐츠’가 많이 나왔고, 그 파급력도 주류 가요 못지않다”고 전했다. 케이티(KT)가 운영하는 음원 사이트 올레뮤직은 최근 ‘올레 인디 어워드’를 만들기도 했다.
연예기획사들이 변화를 놓칠 리 없다. 예당컴퍼니는 ‘나가수 신드롬’ 주역인 가수 임재범·조관우에 이어, 홍대 앞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록 밴드 국카스텐을 영입했다. 하광훈 음악사업본부장은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흐름이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공세적 행보를 펼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톱밴드> 우승 밴드 톡식에도 많은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음원 사이트 다음뮤직 관계자는 “요즘은 아이돌 음악을 대문에 내걸어도 전만큼 화제가 되지 않는다”며 “예전보다는 비중을 덜 두는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이처럼 변화의 바람이 부는 데는 1996년 그룹 에이치오티 데뷔 이래 15년간 장기집권해온 연예기획사 주도의 아이돌 음악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 탓이 커 보인다. 평론가 김학선씨는 “대중음악 트렌드는 길어야 10년 주기인데, 아이돌 음악이 비정상적으로 오랜 기간 가요계를 장악해 왔다”며 “(앞으로는) 아이돌과 다양한 비아이돌 음악이 공존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튜브 등 동영상 사이트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다양한 장르 음악들을 더욱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된 것도 주된 요인 중 하나다. 요즘 대다수 음악인들은 트위터·페이스북으로 대중과 직접 소통하고 음악을 알린다. 쌍방향 소통이 이뤄질 경우 진성 팬들은 더 늘어난다. 팬들끼리도 음악을 공유하고 퍼뜨린다. 인터넷 동영상과 팬카페를 통해 ‘중장년층의 뮤즈’로 떠오른 통기타 가수 강지민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파급력이 예전만 못해진 아이돌 가수들은 되레 일본·미국·유럽 등 외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보다 시장 규모가 훨씬 큰데다, 아이돌 음악이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소녀시대, 카라 등에 이어 티아라, 애프터스쿨 등 여러 걸그룹들이 올해 앞다퉈 일본에 발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 새 앨범을 낸 카라는 국내 활동을 3주만 하고 일본으로 향했다. 소녀시대는 19일 발표하는 3집을 미국·유럽·남미 등에도 발매할 예정이다.
물론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음반사 대표는 “오디션 프로 출연자 말고 과거 서태지처럼 독자적 콘텐츠로 대중음악계를 뒤흔드는 슈퍼스타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며 “변화의 물꼬가 획기적 단계까지 이어질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대중음악 흐름의 변화 조짐이 ‘지각변동’으로 본격화하려면 새롭고 독자적인 음악을 내세운 슈퍼스타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강지민 팬카페, 뉴시스
음원사이트 ‘엠넷’ 100위곡 분포
SNS 타고 다양한 장르 음악 ‘볼륨 업’ 아이돌 음악에 피로 느낀 대중
인디 ‘킬러 콘텐츠’로 눈돌려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 <한국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는 올가을 대중음악 흐름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온 진원지다. <톱밴드> 출연 밴드가 서울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하면 아이돌 음악을 즐기던 젊은 관객은 물론 등산복 차림 중장년층까지 몰려든다. 팬들은 직접 록 축제 기획에도 나섰다. 포크 바람을 몰고 온 ‘쎄시봉 열풍’, 잊혀진 실력파 가수를 다시 불러낸 ‘나가수(나는 가수다) 신드롬’에 뒤이은 열풍이다. 아이돌 아닌 새 음악에 대한 대중의 갈증이 없었다면 이런 움직임까지 이어지진 못했을 것이다.
아이돌이 지배해온 국내 대중음악계의 지형을 새롭게 바꾸고 있는 대중음악인들. 왼쪽부터 통기타 가수 강지민, 인디밴드 십센치, <나가수>에 출연중인 장혜진, <톱밴드>에서 우승한 밴드 톡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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