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42) 작가
임흥순 작가, 7번째 개인전
“금기시되는 아픔·고통 끄집어내”
“금기시되는 아픔·고통 끄집어내”
칠흑 같은 미로를 헤매다 찾은 전시장 통로 끝에 그가 손전등을 들고 서있었다.
“전시장 자체가 역사적인 죽음과 삶에 대한 저의 성찰을 담은 공간입니다.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좁고 어두운 통로는 잊혀진 제주 4·3 항쟁의 과거로 들어가는 기억의 통로라고 할 수 있죠.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민중들을 지배했던 두려움과 예측 불가성을 관객들에게 느껴보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도시빈민과 이주노동자 등 한국 사회에서 소외받는 약자들의 삶과 그들의 어두운 기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아온 임흥순(42·사진) 작가가 ‘제주 4.3’을 주제로 7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30일까지 서울 견지동 평화박물관의 시각예술전시공간 스페이스99에서 진행중인 ‘비는 마음-제주 4·3과 숭시’ 전시는 지난 2년 넘게 제주섬 전역과 4·3의 생존자가 이주한 일본 오사카 등을 찾아다니면서 발굴해낸 작업들이다. “외부인의 눈으로 거리를 두면서 4·3 이후 버려진 과거와 흔적들을 되짚어봤어요. 지금도 터부시 되는 고통과 개인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 보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4·3 당시 무장대 총책 이덕구 대장이 죽음을 맞이한 곳인 조천읍 교래리 ‘사려니 숲’을 담은 사진 연작 <이름없는 풍경> 7점과 4·3 이후 살아남은 이들의 모습,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문제 등을 짚은 25분짜리 영상물 <숭시>를 선보였다.
색다른 아카이브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이 대장과 2003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뒀던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만남을 담은 4분 영상물 <롱 굿바이>, 자신이 찍은 제주의 풍경 사진들과 ‘4·3’ 당시 미군정의 기록사진을 비교 수록한 사진집 <제주 노트>, 4·3 당시 사살된 한 시신에서 발견된 나무도장 등이 그것이다.
“이덕구 대장과 김주익 위원장은 거대 권력에 희생되었고 무언가 큰 것을 위해 생명을 내던졌다고 생각해요. 제주 4·3과 강정마을 문제는 우리 시대가 풀지 못한 과거의 상처들이 필연적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제주 사람들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제 2의 4·3’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4·3 때 살아남은 한 시인이 들려준 제주 귤의 의미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시인은 빨간색과 파란색이 서로 색을 인정하지 않은 이상 뒤섞이면 탁해진다고 했습니다. 흑색이 된다는 거죠. 그러면 모두가 죽는다는 겁니다. 시인은 그 중간색이 뭘까 고민하다가 주황과 녹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색을 만들려면 노란색이 필요하다고 하지요. 저도 시인처럼 예술가로서 그 노란색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02)735-5811~2.
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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