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백성희(86)씨
‘모래의 정거장’ 출연 백성희
몸짓 표정으로 전하는 `침묵극’
젊은 시절 그리워하는 노파역
86살 최고령 여배우 열정 과시
몸짓 표정으로 전하는 `침묵극’
젊은 시절 그리워하는 노파역
86살 최고령 여배우 열정 과시
연극 <3월의 눈> 앙코르 공연을 앞둔 지난 4월 말 어느 날, 주연배우 백성희(86)씨가 시간이 지나도 연습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좀체 늦는 일이 없던 터라, 모두가 의아해했다.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그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 백씨는 집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간신히 수화기에 손을 뻗었다.
“나는, ‘그래 손 감독. 나야’ 하고 대답하는데, 건너편에선 안 들린다는 거야. 소리가 안 나는 거였죠.”
뇌줄중이었다. 그는 곧장 입원했다.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평소 아침마다 체조를 하며 건강을 관리해 온 덕이었다. 하지만 꾸준히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런 그가 이번 가을에 다시 무대에 서기로 한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신작 <모래의 정거장> 출연 제의를 받고 고심했다.
“선생님, 앞으로 무대에 안 서고 그렇게 누워만 계실 거예요?”
김아라 연출가가 던진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다. 서울, 부산, 도쿄까지 돌아다니는 일정이 쉽지는 않지만,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조심하면서 백씨는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 <모래의 정거장>은 지난 7·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15·16일 부산 범일동 엘아이지 아트홀에서 공연됐다. 22·23일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 뒤, 다음달 3~6일 일본 도쿄에서도 무대에 오른다.
<모래의 정거장>은 일본 작가 오타 쇼고의 ‘정거장’ 4연작 가운데 <물의 정거장>, <바람의 정거장>에 이은 세 번째 작품. 대사 없이 배우들 몸짓과 표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침묵극이다. 백씨 외에도 권성덕, 박정자, 남명렬 등 원로 배우들과 시나가와 도루, 스즈키 리에코, 오스기 렌 등 일본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김아라 연출가는 작품을 준비하면서 처음부터 백씨를 염두에 뒀다. 7개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극에서 백씨는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을 그리는’ 노파를 맡아 극의 문을 여닫는 구실을 한다.
“(함께 출연하는) 박정자씨가, ‘선생님 무대에 서시는 거 의사가 제일 기뻐할 거예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말마따나 공연 첫날 담당 의사가 꽃을 들고 오셨더라고.” 백씨는 스스로, “‘60여년 동안의 과로’가 쌓였던 것 같다”며 몇달 전 뇌졸중의 원인을 분석했다. “매번 연극을 하고 나면, ‘이번엔 병원 가서 쉬어야지, 요양해야지’ 했는데 그게 안 되고 지금까지 온 거지.” 작품 질을 가려서 고르지만, 배역의 크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이기에 젊은 시절부터 “좋은 역 나쁜 역이든, 젊은 역 노인 역이든, 대사가 있든 없든” 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무대에 올라왔다. 현역 여배우 가운데 최고령이라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지난 3월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 작품 <3월의 눈>에도 출연했다. 백씨보다 한살 위인, 국내 최고령 배우이자 백씨와 100여편의 무대에 함께 섰던 장민호씨와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따서 붙인 극장이다. 백씨는 “나는 이렇게 나아서 돌아다니는데, 요즘은 장 선생이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며 걱정했다. 처음 연극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어순이’란 본명도 감춘 채 연극배우 ‘백성희’로 살아온 지 60여년. 한국전쟁 때 피난지 대구에서도 공연을 계속하며 300여편 넘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온 그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2001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도 출연해 관객의 마음을 울렸던 이 노배우는 “현장에서 관객을 감동시키고, 웃기고, 한숨짓게 하면서 흡인하는 게 배우”라며 연극인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02)889-3561~2.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함께 출연하는) 박정자씨가, ‘선생님 무대에 서시는 거 의사가 제일 기뻐할 거예요’라고 말하더라고요. 말마따나 공연 첫날 담당 의사가 꽃을 들고 오셨더라고.” 백씨는 스스로, “‘60여년 동안의 과로’가 쌓였던 것 같다”며 몇달 전 뇌졸중의 원인을 분석했다. “매번 연극을 하고 나면, ‘이번엔 병원 가서 쉬어야지, 요양해야지’ 했는데 그게 안 되고 지금까지 온 거지.” 작품 질을 가려서 고르지만, 배역의 크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이기에 젊은 시절부터 “좋은 역 나쁜 역이든, 젊은 역 노인 역이든, 대사가 있든 없든” 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무대에 올라왔다. 현역 여배우 가운데 최고령이라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지난 3월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 작품 <3월의 눈>에도 출연했다. 백씨보다 한살 위인, 국내 최고령 배우이자 백씨와 100여편의 무대에 함께 섰던 장민호씨와 자신의 이름을 나란히 따서 붙인 극장이다. 백씨는 “나는 이렇게 나아서 돌아다니는데, 요즘은 장 선생이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며 걱정했다. 처음 연극한다고 했을 때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어순이’란 본명도 감춘 채 연극배우 ‘백성희’로 살아온 지 60여년. 한국전쟁 때 피난지 대구에서도 공연을 계속하며 300여편 넘는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온 그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2001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도 출연해 관객의 마음을 울렸던 이 노배우는 “현장에서 관객을 감동시키고, 웃기고, 한숨짓게 하면서 흡인하는 게 배우”라며 연극인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02)889-3561~2. 글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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