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문래동 한 철공소 건물 안에 차려진 대안예술공간 이포의 전시장. 이웃 주민들과 작가들이 함께 꾸민 사진전을 둘러보고 있다. 정상영 기자
재래시장 활성화·도심재생 ‘지역이슈’ 반영
철공소 사진전·안마시술소 갤러리 시도
주민들과 공감대 형성·자금난 ‘해결과제’
철공소 사진전·안마시술소 갤러리 시도
주민들과 공감대 형성·자금난 ‘해결과제’
# 철공소에서 아트를!
지난 24일 오후 서울 문래동 한 철공소 건물에 아파트 주민과 식당 주인, 다방 종업원, 철공소 사장 등이 삼삼오오 모였다. 3년 전부터 이곳에 밀집한 빈 철공소 공간에 들어가서 ‘커뮤니티 아트’ 작업을 해온 ‘대안예술공간 이포’가 꾸린 미디어 영상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미래로 돌아가다’란 제목이 붙은 전시장에는 문래동 철공소가 지닌 과거의 시간과 공간들을 담은 사진이 내걸리고 영상물이 돌아갔다. 문래동 자이아파트 주민 최영식씨와 세현정밀의 김덕진 사장, 김천수 뮤직비디오 감독 등은 ‘4인 4색 사진 워크숍’을 선보였다. 한기례 할머니, 가정식당 주인 정혜순씨, 공은주 작가, 은정다방 송나영 사장 등은 몇십년 동안 간직해온 빛바랜 사진으로 ‘사진의 사진전’을 꾸몄다. 이포의 박지원 대표는 “이 동네에 삼십년 이상 살아온 이,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누나, 어머니이자 사장님이 이 전시의 진정한 참여작가”라고 했다.
# 안마시술소를 공방으로?
최근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유흥가에서는 작가들이 애써 만든 ‘아트 공방’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다. ‘인계시장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이곳 옛 안마시술소 건물에서 석달여간 둥지를 틀었던 재활용 예술작품 공방이 지난달 24일 문을 닫은 것. 공공미술 작가 김월식(42)씨가 6월18일부터 건물을 ‘생활문화예술재생레지던시’ 공간으로 바꾸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건물 4층과 5층을 작업실과 갤러리, 작가 숙소, 미술시장으로 꾸며 주민들에게 개방했다. 10개팀 작가 11명은 방마다 개성 있는 공방 간판을 걸고 버려진 술병이나 가구 등을 재활용한 작품을 만들어 팔아왔다. 평단과 작가들 사이에서 한국 커뮤니티 아트의 모범으로 손꼽히기도 했지만, 운영난을 겪으면서 공방은 활력을 잃고 작가들은 철수해야만 했다.
문래동 철공소 전시와 인계시장 프로젝트는 한국 미술판의 주요 텃밭인 공공미술이 올해 보여준 빛과 그늘의 한 단면들이다. 최근 2~3년 사이 국내 젊은 공공미술 작가들은 흉물스러운 환경조형물과 뒷거래 짬짜미 의혹만 낳았던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애써왔다. 특히 지역 공동체의 삶과 직접 연관된 이슈를 소통하며 작가와 주민이 함께 작업하는 커뮤니티 아트는 최근 2~3년 사이 공공미술의 새 패러다임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에서 보이듯 성과 이면에는 근본 역량의 한계 또한 뚜렷해 보인다. 인계시장 프로젝트를 벌였던 작가 김월식씨는 “자금난 탓도 있지만 예술가들의 운영이 미숙했고, 치밀한 사전준비도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지속가능한 예술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국내에서 커뮤니티 아트 작업은 도시마케팅, 도심재생, 재래시장 활성화, 문화 이모작 등의 명분을 내걸고 전국의 도시와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업의 목적도 도시개발(창의도시프로젝트), 지역·경제 활성화(문전성시프로젝트), 지역재생(부산 또따또까), 커뮤니티 활성화(사랑방클럽, 논아트밭아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양적 측면에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지역 주민들의 공동체 문화 속에 작가들의 작업이 뿌리를 내렸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참가 작가들이 현장에서 인식하는 공공미술 개념의 혼란, 해당 지자체·지역 주민과의 인식 격차 등으로 프로젝트가 지속되지 못하고 삐꺽거리는 한계도 보인다. 실제로 최근 경기문화재단 지원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광릉숲 둘레 마을에서 작가들이 벌인 ‘논아트밭아트’ 프로젝트는 시유지 하천 기슭에 작품 공작소와 밭 공원을 만들려다 점유권을 내세운 일부 주민들의 반발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커뮤니티 아트를 비롯한 공공미술이 주민들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작가와 주민, 지자체 사이에 지역 현안이나 일상 생활에 대한 사전 교감이 부족하고, 작업 지향점 등이 현지 실정에 맞게 정립되지 않은 탓이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미술평론가 김종길씨는 “소통을 앞세우는 커뮤니티 아트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대중과 공감대를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보기에 아름다운 기존 미술 작품을 기대하는 지자체나 주민들에게 작업이 낯설게 비칠 수 있는 만큼 실제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작가들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발적인 주민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 공공미술은 올 연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지난 5월 ‘문화예술진흥법’이 개정되어 11월26일부터 개정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논란을 빚어온 ‘건축물 미술장식제도’와 관련해 건축부속물에 가까운 ‘미술장식’을 공공미술 개념인 ‘미술작품’으로 대체하고 미술작품 설치기준과 심의위원회 등의 절차를 정비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흉물만 양산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공공미술정책이 크게 바뀌는 만큼, 커뮤니티 아트 차원에서도 제도 변화에 걸맞게 주민 소통과 작업 방식을 새롭게 성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지난 6~9월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유흥가 옛 안마시술소 건물에 ‘인계시장 프로젝트’ 작가들이 차렸던 열린카페 요요키친. 작가, 관객과의 대화가 열리고 있는 모습이다. 인계시장프로젝트 제공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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