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발레단의 드라마발레 <오네긴>
리뷰 발레 ‘오네긴’
“감정이 너무 북받쳐서, 어딘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에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 무용수 강효정(26)은 아직 극의 격정에 휩싸여 있었다. 지난 15일 저녁 열린 유니버설발레단의 드라마발레 <오네긴> 공연(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주인공 ‘타티아나’를 열연하고 무대를 내려온 그는 공연을 끝낸 안도감에 해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눈엔 소중히 지켜온 그 무엇과 이별한 듯한 아쉬움이 어렸다. 아마도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음을 삼키던 타티아나의 감정 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는 중이었을 테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인 푸시킨 원작의 <오네긴>(안무 존 크랭코)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관계의 생로병사를 우아하고 쓸쓸한 분위기로 그려낸다. 긴 세월 끊어질 듯 이어지는 등장 인물의 사랑과 이별, 늦은 후회, 그럼에도 돌이킬 수 없는 인연을 따라간다. 클래식·낭만발레에 나타나는 화려하고도 형식적인 개인기의 상당 부분을 덜어낸 대신, 무용수들은 사소한 몸짓으로도 인물의 감정선을 표현해냈다. 남자 무용수가 여자 무용수를 한쪽 어깨에 수직으로 똑바로 세워 들어올리는 고난도 기량과 이를 뒷받침한 무용수들간의 치밀한 호흡이 감상의 중요한 요소였다.
강효정은 이번 <오네긴> 공연에 초대돼 처음 타티아나를 연기했다. 두번 무대에 오른 그는 13일 공연 뒤 몸살로 링거를 맞으면서도 15일 인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1막에서는 꿈꾸는 듯한 소녀의 얼굴로 등장해 미래 남편을 점치는 ‘거울점’을 보고, 2막에서는 구애를 거절하고 떠나는 오네긴을 잡지도 못하는 애처로운 여인의 모습을 구현했다. 결혼한 그레민 공작과 함께 추는 3막의 2인무 장면에서 그는 비로소 마음 둘 곳을 찾았다는 안정감을 몸짓으로 전했다. 공연 끝에는 뒤늦게 불쑥 나타난 오네긴에게 흔들리다가 그의 편지를 찢어버리고 결국 혼자 눈물짓는다. 공연시간 2시간20분 동안 강효정은 폭넓은 감정을 압축시켜 표현하며 뛰어난 해석력을 보여줬다.
그의 남자짝인 슈투트가르트 수석무용수 에번 매키의 연기도 돋보였다. 그는 187㎝의 훤칠한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렵한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하면서 ‘나쁜 남자’ 오네긴을 매력적으로 형상화했다. 특별한 장식 없이 간소하게 꾸민 무대가 인물들의 감정 흐름에 대한 집중력을 높였다.
강효정은 16일 출국했지만, 공연은 19일까지 이어진다. 에번 매키와 유니버설발레단의 강예나, 황혜민, 엄재용, 강미선, 이현준이 주역으로 오른다. (02)2005-0114.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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