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ㅣ 사이먼 래틀 세번째 내한공연
“음악은 꿈꾸면서 소리 내기 시작하는 침묵이다.”
독일의 작가 막스 피카르트는 자신의 저서 <침묵의 세계>에서 이렇게 역설한 바 있다. 그렇다. 음악의 소리는 크다고만 하여 듣는 사람을 위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음악은 그 소리가 작아질수록 우리의 숨을 조이고 정신을 각성시키고 영혼을 일깨운다. 지난 15, 16일 한국을 세 번째로 찾아온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은 꿈꾸는 듯 최약음으로 끝을 맺는 대작 교향곡 두 편을 내리 연주하여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난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 작품은 말러의 <교향곡 9번>. 1악장만 단편으로 남아 있는 <교향곡 10번>을 제외한다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후기 낭만파 음악계의 거성이 쓴 최후의 교향곡이다. 존 바비롤리부터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거장들의 지도에 의해 연주 시간 80분이 넘는 이 난곡을 익히 숙달하고 있는 베를린 필은 연주 내내 막강한 합주력을 발휘하며 강철 군단다운 위용을 과시했다. 2005년과 2008년 콘서트 때 보여준 기량 이상이었다. 현대 오케스트라가 도달할 수 있는 세련된 기능미의 극치를 제시했다고나 할까. 어떠한 국면에서도 칼날로 도려내는 듯 깔끔하게 악구를 처리하는 솜씨가 탄성을 연발하게 했다. 세세한 팔 동작으로 구석구석 연주를 관리하는 지휘자 래틀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특이한 점은 해석이었다. 그는 이지적으로 말러 교향곡을 바라보는 요즘의 여타 지휘자들과 달리 음악의 극성을 최대한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강약과 속도의 대비가 격렬해 큰 물결로 전후좌우 출렁이는 듯한 1악장과 3악장은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관현악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는 것도 불사하는, 호불호가 뚜렷이 갈릴 연주였다. 아시아 투어 전인 이달 3~5일 본거지 베를린에서 세 차례 공연을 펼치며 충분히 호흡을 맞춘 작품인지라, 래틀의 이런 의도는 작곡가의 피 마르는 고통과 어두운 정념에 초점을 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행스럽게도 약한 떨림으로 잦아 들어가는 4악장 말미는 숙연하고 감동적이었다. 래틀과 베를린 필은 이 걸작이 말러의 유언임을 증명했다.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마지막 악장을 미완성 상태로 남긴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들려주었다. 전날보다 합주가 훨씬 안정됐고, 래틀의 지휘도 보편타당한 스타일이어서 이론의 여지 없는 설득력으로 다가왔다. 브루크너 교향곡 전에는 라벨 <어릿광대의 아침노래>와 일본 작곡가 호소카와 도시오의 호른 협주곡 <꽃피는 순간>이 연주되었다. 이틀간 콘서트를 빛내는 데는 청중의 매너도 한몫을 했다. 모든 음이 사라지고 홀 안에 정적만이 남는 순간까지 관객들은 침묵을 지키며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을 영원으로 만들었다.
이영진/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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