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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밀봉된 ‘무당의 입김’…재창조된 ‘애버리지니 수피화’…

등록 2011-11-17 20:22

브룩 앤드루의 <순환회로: 세계의 작동 모델>(2008)
브룩 앤드루의 <순환회로: 세계의 작동 모델>(2008)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호주 수교 50돌’ 기념 전시
두 나라 47명 작가의 회화·조각 등 130여점 한자리에
80살에 붓잡은 원주민의 ‘전설’ 응워리 작품 등 강렬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마름모 무늬, 나무껍질 속에 합성수지로 그린 사람과 뱀들….

전시장은 오세아니아 대륙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원초적 에너지가 현대미술과 만나 숨 쉬는 난장이다. 특유의 거대한 벽화와 알록달록한 점 그림 등이 현대문명의 여러 잡동사니 용품들과 뒤섞이면서 유럽, 미국 현대미술에서 볼 수 없는 감수성을 내뿜는다.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10일부터 시작한 ‘텔미텔미: 한국-호주 현대미술 1976~2011’전은 낯선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드문 자리다. 수교 50돌을 맞아 기획한 이번 전시는 한국 작가들이 현지 시드니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1976년부터 시작된 두 나라 현대미술의 인연을 바탕으로 기획됐다. 두 나라 주요 작가 47명의 다양한 작업들을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설치 등 작품 130여점으로 보여준다.

오스트레일리아 현대미술은 원주민의 독특한 미술유산에도 불구하고 서구 미술의 아류 정도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최근 아시아권 예술가들이 상당수 이주하고, 특유의 다문화 사회가 지닌 개방성 덕분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9월 열린 국내 최대 미술품 판매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에는 주빈국으로 초대돼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기도 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에밀리 응워리, 냐파냐파 등 현지 원주민 미술품들과 이에 영감을 받은 브룩 앤드루 등의 전위적인 작품들. 전시장 중앙홀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도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문양으로 장식된 거대한 벽화다. 각진 마름모 무늬 위에 나선형 네온 형광등이 반짝거리는 이 작품은 브룩 앤드루의 <순환회로: 세계의 작동 모델>(2008·사진). 전통과 현대가 맞물린 세상의 작동 원리를 보여주는 이 설치작품의 밑그림 무늬는 작가 어머니의 고향인 위라주리 지역 부족의 방패 문양을 본뜬 것이다. 그 옆에 계룡산 무당의 입김을 유리항아리에 밀봉한 한국 작가 길초실씨의 작품 <브레스테이킹>(2009)이 화답한다. 원시 애버리지니와 한국 무속이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풍경이다.

에밀리 응워리의 그림 <무제-알할커>(1992)
에밀리 응워리의 그림 <무제-알할커>(1992)

원주민 출신 작가 랄라라 가이야비자의 수피화(나무껍질 그림)인 <무제-여행하는 바위>(1970)는 나무 껍질 안쪽에 인물, 뱀의 모습을 그려넣었다. 애버리지니 수피화는 본디 제례용으로 태워 없애버리곤 했지만, 70년대 이후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원주민 미술의 전설적인 작가 에밀리 응워리의 그림 <무제-알할커>(1992)도 강렬하다. 고향 알할커를 주제로 한 이 그림은 촘촘한 분홍, 빨강 점들로 메워진다. “내가 그리는 건 꿈, 도마뱀, 잔디 씨앗, 에뮤, 녹색 콩 등의 ‘모든 것’”이라는 작가 생각이 녹아 있다. 그는 80살 가까운 나이에 작품을 시작해 1996년 87살로 숨질 때까지 뛰어난 그림들을 남겼다.

백인 기독교 문화를 겨냥한 풍자적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젊은 작가 뉴얼 해리의 설치작품 <성병 걸린 유신론자들이 휴식을 취할 때 토착민들은 쉴 수 없다>(2008)는 천 위에 기독교 십자를 검게 그린 뒤 가장자리에 작은 전구들이 깜박거리면서 마치 제의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 위에는 잉크, 전등, 구슬, 세라믹, 끈, 조개, 병, 변압기 같은 일상 기물들을 놓았다. 아프리카 출신 부모에게서 태어난 작가가 남태평양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물물교환으로 얻은 물건들로 만든 다문화 코드의 작품들이다.


국내 작가로는 1976년 2회 시드니 비엔날레에 전시됐던 이우환씨의 설치 미술 <상황Ⅰ>과 당시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인터뷰 비디오 영상 등 작고·원로작가의 1970년대 작품들과 이수경, 정서영, 김범, 박병춘, 양혜규 등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들이 고루 나왔다. 기획자인 김인혜 학예사는 “오스트레일리아 현대미술 작가들은 공예와 순수미술의 경계에 의문을 던지면서, 지배문화의 이데올로기를 풍자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것이 특징”이라며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현대미술의 역사를 만들어온 두 나라 작가들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시드니 현대미술관 공동기획전으로 지난 6월 시드니에서 먼저 전시를 마치고 들어왔다. 내년 2월19일까지. www.moca.go.kr, (02)2188-60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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