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개인전 ‘회로에서’
조각가 김주현씨는 수학적으로 뽑아낸 이미지 속에서 독특한 감성을 길어올린다. 단위가 되는 개체들의 결합을 통해 유기적인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작업 구상이 된다. 이를 석고, 종이, 경첩, 철재, 목재 등을 써서 실체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프랙털’, ‘카오스’, ‘복잡성’ 같은 현대과학의 난해한 사유를 조각과 설치작품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와 생태계의 그물코 같은 관계망을 표현해왔다.
그가 전기회로를 소재로 만든 작품을 모아 서울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개인전 ‘회로에서’를 열고 있다. 전시장에서 우선 눈에 띄는 작품이 신작 <회로에서-접속>이다. 전선을 흐르는 한쪽 극의 전기와 바닥에 놓인 금속판의 또다른 전극이 피복이 벗겨진 가느다란 철사를 통해 접속되면서 수백개의 발광다이오드(LED)를 밝히도록 고안한 작업이다.
“작은 단위들이 일련의 법칙에 의해 결합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다양한 조형방식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전시 작품 역시 하나에서 시작하여 수백개로 확장되는 전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전선을 타고 흐르는 양극의 전기가 회로에서 만나 작은 불빛을 밝힘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관계를 나타내죠.”
작가는 “복잡한 세상 속에 감추어진 단순하고 당연한 원리를 찾아 조형물로 재조립하는 작업을 통해 접속의 의미와 상호관계성을 이야기하려고 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에서는 <회로에서-접속>, <회로에서-127번의 만남>, <토러스> 등 입체작품 15점뿐만 아니라 제작도면이자 그림인 드로잉 41점을 함께 전시해 작품 제작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현대과학과 수학적 연구에 빠진 까닭은 무엇일까. 작가는 “위상수학이라는 강의를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평면에서만 계산하는 것인데 위상수학은 공간이 휠 수도 있다고 가정하는 거죠. 그러면 직선이 곡선이 되고 길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처음으로 길이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작품을 하면서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면 불이 들어오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요즘 우리 사회가 그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취급되는 것을 보면 화가 치민다”고 했다. “예를 들어 현재 벌어지는 4대강 건설도 그래요. 생태고리나 관계를 인위적으로 끊어버릴 때 반드시 폐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의 작품에서 여러 조각의 단위들이 서로 얽혀 조화로운 하나가 되듯이 우리들 개개인도 밀접한 상호관계 속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만 해요.”
서울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미대를 졸업한 작가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12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005년 김종영미술관에서 연 ‘확장형 조각’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12월20일까지. (02)549-3031. 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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