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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탁한 시대, 정치인들에 날리는 ‘똥바가지’

등록 2011-12-08 20:29

중견화가 윤동천(52)씨
중견화가 윤동천(52)씨
윤동천 개인전 ‘탁류’
4대강·FTA 등 한국현실 풍자
쥐덫·살충제 등으로 표현한
신랄한 상상력에 포복절도
“내가 지금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당신이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전에….”(‘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1960년대 암울했던 시절 시인 김수영은 ‘참여시’로 독재와 억압이 만연하던 세상에 침을 뱉었다. 중견화가 윤동천(52·위 사진)씨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4대강 사업, 경제정책 실패, 언론 왜곡, 막개발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한국 현실에 거침없이 침을 뱉었다. 침이 아니라 거의 가래 수준이다. 또 그런 현실을 초래한 정치인들에게 ‘주먹감자’를 먹이고 표백제와 살충제를 뿌려댄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오시아이(OCI)미술관에서 ‘탁류’(Muddy Stream)를 주제로 열고 있는 그의 개인전 풍경이다.

“요즘 시대가 너무 탁한 것 같아요. 이런 한심한 시대가 제게 저런 작업을 하게 만들었어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었습니다. 또 그런 시대를 만든 것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고요.”

그는 “전시회의 주제 ‘탁류’는 제가 지금 이 시대를 읽는 관점”이라며 “지금 시대에 대해서 더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치가를 위한 도구
정치가를 위한 도구

그동안 그는 사회를 관통하는 사건과 지표들을 재치 있게 비틀거나 통렬하게 뒤집어 보임으로써 예술과 사회와의 소통을 꾸준히 꾀해왔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그림, 사진, 텍스트 등 평면작품 42점과 설치작품 10점을 살펴보면 그가 꾸준히 견지해온 ‘사회적 관심’이 더 거시적으로 확장되고 정치적인 풍자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친 붓 자국이 선명한 대형 추상작품 <탁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온갖 색과 선이 얽혀 있는 모습이 우리 삶의 혼탁한 현실을 추상, 미니멀리즘 형식으로 표현한 듯하다. 또 김수영 시인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와 참여시 ‘거대한 뿌리’에서 작품의 동기를 따온 <거대한 침-김수영 시인을 기리며>에서는 한국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정치적인 의도가 분명해진다. 검은 바탕의 캔버스에 검은 토너를 유약으로 섞어 한번에 뿌린 이 작품은 썩어빠진 세상에 내뱉는 대중들의 거친 목소리를 대변한다. 또 2개의 연작 그림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은 정부의 4대강 사업이 강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설치작품과 그림으로 짜인 ‘정치가’ 연작과 ‘정치가를 위한 도구’(아래) 연작은 신랄하고 직설적인 은유와 시각적으로 강렬한 표현이 뚜렷하다. 한국 정치인들이 오리발을 내밀고(<내밀다>), 귀를 막고 있고(<경청>), 애드벌룬을 띄우고(<공약>), 버선처럼 겉과 속이 다르고(<속>), 철새떼(<특질>)인 속성을 조롱한다(‘정치가’ 연작). 그래서 그는 개 같은 모습의 정치인들(<오직 보이는 것 1·2>)에게 필요한 것은 갖가지 파리채와 똥바가지, 몽둥이, 쥐덫, 밥주걱, 총명탕, 끈끈이, 살충제, 세척제라고 말한다(‘정치가를 위한 도구’). 각종 물건이 실제의 사용 용도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로 변환되는 표현 방식이 포복절도하게 만든다.


그는 “살충제나 표백제, 쌀벌레 제거제 등에 붙어 있는 ‘도망갈 틈 없이 뿌린 즉시 살충’, ‘찬물 세척에 표백 살균까지’, ‘살균 99.9%’, ‘살균, 소독, 악취 제거까지’ 같은 표현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것들은 다 옛날에 생각했던 것인데 다시 하려고 하니까 ‘내가 상상력이 고갈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가 변하면 상황이 달라져야 하는데 너무 똑같으니까 결국 저런 이야기를 계속한다는 게 한심하더라고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심한 비애감을 느꼈어요. 이 나이에 저런 똥바가지 만들면서 전시회를 준비한다는 게…. ”

윤동천 작가가 3년여 만에 여는 이번 개인전은, 현실을 직시하며 끊임없이 예술과 사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려는 작가의 철학과 풍자와 해학이 빚어내는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다. 다음달 15일까지. (02)734-0440.

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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