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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교향곡 따라 맞춤 지휘자 ‘열개 봉우리’ 넘어 새 경지

등록 2011-12-25 20:11

정명훈과 서울시향
정명훈과 서울시향
리뷰 서울시향 말러 시리즈
과연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는가? 그렇다. 인간이 만들었음에도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지난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과 서울시향(사진)이 들려준 말러의 대작 <교향곡 8번>은 이를 웅변한 연주였다. 처음부터 음악은 저항할 수 없는 부피로 떠올랐고, 거대한 밀물처럼 관객을 삼켰다. 마지막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은 사랑과 구원이란 메시지를 신비로운 운율로 내뿜었다.

국내에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는 두 차례 이뤄졌다. 1999~2003년 부천시향의 도전이 첫째요, 이번에 서울시향이 완결한 말러 시리즈가 그 둘째다. 지난해 8월26일 <교향곡 2번 ‘부활’> 공연부터 이번 <교향곡 8번> 공연까지 시향은 비교적 짧은 시일에 말러 교향곡 열 편을 모두 연주했다. 작품에 맞춰 지휘자를 적절히 안배해 효과를 키웠다. 미완성곡에 음악학자 데릭 쿡이 보필해 완성한 악보를 쓴 <교향곡 10번>은 이 곡을 열 번 이상 무대에 올렸던 베테랑 지휘자 제임스 드프리스트에게 의뢰했다. <교향곡 7번>은 시향의 ‘익스플로러’ 연주 시리즈에서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들려준 부지휘자 성시연에게 맡겼다. 나머지 곡은 정명훈 예술감독이 전담했다.

시향의 말러 연주는 만족스러운 부분과 미흡한 부분이 엇갈렸다. <교향곡 2번>의 경우 악장들을 잇는 응집력은 약했지만, 장엄하게 팽창하는 피날레는 일품이었다. 지난해 10월7일 드프리스트가 지휘한 <교향곡 10번>은 국내 초연 의미와 함께 곡을 독해하는 명철한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11월3일 <교향곡 1번> 공연에서 정명훈은 로맨틱한 기운이 물씬한, 일렁이는 봄바람 같은 연주를 선사했다. 악곡의 실험성은 희석됐지만, 널따란 화폭 위에 세상의 모든 노을 풍경을 그려낸 듯한 12월30일 <교향곡 3번> 연주를 끝으로 말러 시리즈는 올해로 넘어왔다.

1월14일 온화한 정조의 <교향곡 4번> 연주로 추운 계절을 녹인 정명훈은 같은 달 21일 <교향곡 5번>과 10월20일 <교향곡 6번 ‘비극적’> 공연으로 인생의 긍정을 역설했다. 염세적 분위기를 줄인 해석으로 5번 연주가 매끄럽고 탄탄했던 반면, 6번은 합주가 다소 정돈되지 못했다. 성시연은 11월11일 <교향곡 7번> 공연에서 한밤의 기묘한 이미지를 음 공간에 산뜻하게 아로새겼다. 그리고 12월9일 정명훈은 절망을 소멸시키고 안식을 수용하는 <교향곡 9번> 연주로 삶을 낙관하는 자신의 철학을 아름답게, 설득력 있게 풀어내었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할 점은 1년 4개월에 걸친 ‘말러 시리즈’로 서울시향이 한 단계 이상 성숙했다는 사실이다. 해석에 대한 찬반 여부는 열린 담론이므로 유보하자. 세세한 실수도 꼽기 힘들 만큼 많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열성과 노력으로 눈앞의 난곡들을 적극 돌파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앙상블 강도가 향상된 것은 당연지사. 수동형에서 능동형으로의 전환이야말로 한 오케스트라의 밝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발전의 척도가 아니겠는가.

이영진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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