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광화문 작업실에서 자신의 디지털애니메이션 작품 ‘더 화이트하우스’ 영상 앞에 선 전준호 작가. 미국 20달러 지폐의 백악관 배경 그림을 확대한 대형 영상이 눈을 끈다. 지폐 속에서 한 사람이 흰색 페인트롤러로 백악관의 창문을 하나씩 지워감으로써 세계 패권의 상징이 어이없이 무력화되는 과정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2 이들을 주목하라 카셀도쿠멘타 초대작가 전준호
현대미술 장르 넘나들며
절대권력 등 비틀어 ‘주목’
이스탄불·광주 비엔날레 등
갖가지 전시서 잇단 ‘러브콜’
현대미술 장르 넘나들며
절대권력 등 비틀어 ‘주목’
이스탄불·광주 비엔날레 등
갖가지 전시서 잇단 ‘러브콜’
부산을 근거지로 활동해온 전준호(43) 작가는 최근 서울 광화문에 아예 작업실을 새로 차렸다. 올해 그에게 꿈결같이 다가올 굵직굵직한 국내외 전시들을 작심하고 준비하기 위해서다.
199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이래 디지털애니메이션과 영상,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장르를 넘나들며 문제작들을 발표해온 지 17년이 흘렀다. 전 작가는 올해 그동안의 작가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해를 보낼 참이다. 당장 2월에 미국 미니애폴리스 워커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라이프라이크’ 그룹전에 참가한다. 6월에는 5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전시회인 13회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 출품한다. 9월에는 광주 비엔날레 전시가 기다린다. 특히 카셀 도쿠멘타는 세계 모든 현대미술가들이 선망하는 꿈의 무대다. 한국 작가로는 백남준(1977)과 육근병(1992)에 이어 20년 만에 세번째 공식 초청을 받았다.
지난달 31일 세밑에 광화문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전 작가는 동갑내기 파트너인 문경원(43) 작가와 함께 카셀 도쿠멘타 출품작인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란 프로젝트 준비에 몰두하느라 새해가 온 것도 잊고 있었다. 그와 문 작가의 제언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디자인, 건축, 환경, 의학 등 각 분야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 예술의 지향점과 사회 전반을 성찰하고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그리는 작업. 영화감독 이창동, 에릭 쿠 등 국내외 저명한 예술문화인들이 자문을 맡고 있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해왔어요. 현대 디자인의 시조가 된 19세기 영국의 작가·공예가 윌리엄 모리스의 공상과학 소설 <뉴스 프롬 노웨어>처럼 미래의 어느 날에서 과거, 곧 지금 현재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지금의 예술과 종교, 디자인, 건축, 조명 등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회주의 사상가이기도 했던 모리스가 1890년 발표한 <뉴스 프롬 노웨어>는 주인공 윌리엄 게스트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공산주의 미래 사회에 와 있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 사회에는 사유 재산, 대도시, 화폐 제도, 이혼, 법정, 감옥, 계급 제도가 없다. 모리스는 이 소설에서 자연과 노동에서 즐거움을 찾는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두 작가의 ‘뉴스 프롬 노웨어’는 이 소설을 모티브로 세상이 종말을 맞는 가상 시점에서 다시금 시작되는 삶과 예술의 모습을 영상과 설치작업으로 제시한다. 지구 종말 직전 한 화가의 생활과 지구 종말 뒤 새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교차·비교하면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재의 시스템은 그때도 유효한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서 생활할 것인가’,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예술은 살아 있나’ 등등….
이 프로젝트에서 네덜란드 건축가그룹 엠베에르데베(MVRDV), 일본 패션디자이너 쓰무라 고스케, 한국 디자이너 정구호,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 안과전문의 정상문 등은 지구 종말 이후 생존자들에게 필요한 미래 생필품과 주거환경을 만들고 디자인한다. 그리고 전준호, 문경원 작가는 두 남녀의 미래의 삶을 20분씩 담은 메인 영상 <세상의 끝>을 제작하며 대미를 장식한다. 전 작가는 “‘(현재와 미래에)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며 “몽상가들의 비현실적 이야기이지만 혹여 좀더 나은 다음 세상을 위한 표석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저희가 지향하는 예술가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저는 실천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우리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것이죠. 설사 이런 것들이 구현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이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나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부산 동의대 미술학과와 영국 첼시미술대학원에서 조각과 미디어아트를 배운 전준호 작가는 1990년 초반부터 한국과 세계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한 영상·설치 작품으로 눈길을 끌어왔다. 남한 지폐에 등장하는 오죽헌, 도산서원 등과 북한 지폐에 나오는 고 김일성 주석 생가, 미국 20달러 지폐의 백악관을 배경으로 절대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소통 부재를 꼬집는 디지털애니메이션 작업 시리즈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의 1면 기사를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한 그림 ‘하이퍼리얼리즘 뉴욕 타임스’ 등의 하이브리드 작업은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부산 동의대 미술학과와 영국 첼시미술대학원에서 조각과 미디어아트를 배운 전준호 작가는 1990년 초반부터 한국과 세계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독특한 시선으로 재해석한 영상·설치 작품으로 눈길을 끌어왔다. 남한 지폐에 등장하는 오죽헌, 도산서원 등과 북한 지폐에 나오는 고 김일성 주석 생가, 미국 20달러 지폐의 백악관을 배경으로 절대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소통 부재를 꼬집는 디지털애니메이션 작업 시리즈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의 1면 기사를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한 그림 ‘하이퍼리얼리즘 뉴욕 타임스’ 등의 하이브리드 작업은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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