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프랑스 파리 생 루이 아틀리에에서 작업하던 시절의 수화 김환기.
6일부터 김환기 회고전
‘한국화단 거장’ 60점 망라
‘귀로’ 등 미공개 4점도 선봬
타향살이에도 ‘한국미’ 고수
“눈 감으면 환히 보이는 강산”
‘한국화단 거장’ 60점 망라
‘귀로’ 등 미공개 4점도 선봬
타향살이에도 ‘한국미’ 고수
“눈 감으면 환히 보이는 강산”
무명 화폭에 무수한 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짙푸른 점들은 선으로 이어져 하늘이 되고 끝없는 바다가 되어 넘실거린다. 그 속에 어릴 적 화가가 떠나온 고향인 남도의 신안 앞바다 섬들과 그리운 벗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이 억겁의 윤회가 되어 잔잔한 파동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이라는 화가의 독백이 아프게 다가온다.
한국 화단의 거장이었던 수화 김환기(1913~1974)는 말년 미국 뉴욕에서 벗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를 되뇌면서 조국 강산과 벗들의 그리움을 무수한 점으로 엮어냈다. 그렇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를 그려내었다. 그는 “모든 것은 점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지만, 그에게 점은 외로움과 고통의 방점이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수화의 딸 김금자씨도 “아버지의 뉴욕시대 그림들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치 터질 듯하다”고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찍은 수많은 점들을 보며 ‘아, 여기서 병을 얻지 않으셨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 유명한 명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를 6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시작하는 그의 회고전에서 만나게 된다. 이 화랑이 두해 전부터 시작한 한국 근현대미술 대가 회고전 시리즈의 하나로 박수근, 장욱진에 이어 세번째로 기획된 전시다. 구상·추상을 아우르며 독창적인 한국미의 세계를 구축한 대가였으며, 생전 수천점 그림을 그린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기억되는 수화를 그의 명작들을 통해 새삼 추억하는 자리다.
내년 그의 탄생 100돌을 앞두고 열리는 이 전시에는 그가 20대 중반이었던 1930년대부터 1974년 작고 직전까지 시대별 주요작품 60여점이 내걸린다. 개인 소장가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미공개작 4점을 포함해 기존 공공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내걸려 육십 평생의 작가적 행보와 작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우선 눈을 끄는 작품은 1950~60년대 미공개작 4점. <귀로>(1950년대)와 <항아리와 꽃가지>(1957)는 수화가 사랑했던 한국의 산과 달, 학, 매화, 백자, 여인과 같은 동양적 소재를 서양 기법으로 표현한 구상 그림들이다. 하지만 <메아리>(1964)와 <무제>(1964-65)에서는 형태가 서서히 해체되면서 점, 선, 면 등 단순하고 상징화된 추상작품으로 변주되는 조짐이 엿보인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도 1930~63년 그린 구상 작품 30여점을 본관에, 뉴욕시대로 일컬어지는 63~74년 추상작품 30여점은 신관에 갈라 선보이고 있다. 둘러보면, 14살에 고향 안좌도를 떠나와 74년 뉴욕에서 타계할 때까지 40여년을 타국에서 부초처럼 떠돌면서도 한국의 멋과 미를 고수했던 거장의 고집이 엿보인다.
“나는 동양사람이요, 한국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김환기 수필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문예마당, 1995) 회고전을 맞아 화랑 쪽과 출판사 마로니에 북스는 김환기 작품 도판 140여점과 고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미술평론가 오광수씨 등의 회고글을 담은 국영문 도록도 발간한다. 2월26일까지. www.galleryhyundai.com, (02)2287-35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판 갤러리 현대 제공
“나는 동양사람이요, 한국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김환기 수필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문예마당, 1995) 회고전을 맞아 화랑 쪽과 출판사 마로니에 북스는 김환기 작품 도판 140여점과 고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미술평론가 오광수씨 등의 회고글을 담은 국영문 도록도 발간한다. 2월26일까지. www.galleryhyundai.com, (02)2287-35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판 갤러리 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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