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거장’ 임응식 회고전 <병아리>(1946)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였던 임응식은 1952년 부산에 피란온 사진가들을 설득해 ‘한국사진작가협회’라는 국내 최초의 전국사진가단체를 만든다. 그가 협회의 부회장을 맡았고, 그해 12월12일 창립전을 준비하면서 전시 작품 51점을 1회 일본 도쿄국제사진살롱에도 출품했다. 국제 무대에 명함이라도 내보자는 속셈이었는데, 그가 낸 두 작품 중 하나가 입상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 작품이 1946년 부산 자택에서 부인의 도움으로 찍은 <병아리>다. 갓 부화해 눈도 채 뜨지 못한 병아리 네마리가 유리판 위에서 떨고 있는 사진이다. ‘동상이몽’이란 부제가 흥미롭다. 그의 회고록 <내가 걸어온 한국사단>(눈빛, 1999)을 보면, 병아리들은 한국과 일본, 미국, 소련을 상징한다. 맨 앞에 때깔 좋고 눈도 또렷또렷한 병아리는 한국을, 뒤쪽에 눈이 흐릿흐릿한 병아리 세마리는 미국과 일본, 소련을 상징한다고 한다.
당시 세간에는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말고 일본이 일어선다. 조선은 조심하라’는 재담이 떠돌았다. 작가는 이 말을 곰곰 생각하며 한국의 운명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우연히 시장을 지나다가 한 농부가 대바구니에 병아리들을 담아 파는 것을 보았다. 그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병아리는 바깥바람이 추운지 깃털을 비비며 삐삐 삐삐 울고 있었다. 저거다. 저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주제와 소재가 잡힌 것이다. 그때부터 병아리를 찍으러 산지사방 돌아다녔다.”
작가는 시장에서 사온 병아리 네마리를 유리판 위에 올려놓고 판 아래에서 100여장을 찍었다고 한다. 이런 곡절을 거쳐 찍은 작품이지만, 사진계에서는 작가가 도쿄에 함께 출품했던 <흑의 여인>이 당선작으로 오랫동안 잘못 알려져 왔다. 일본에서 온 입상 통보문에 작품번호만 적혀 있어 그와 협회 회원들이 <흑의 여인>이 당선작일 것으로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국내 신문에도 “한국 사진 사상 초유의 일! 임응식의 <흑의 여인> 국제무대 등단!” 등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병아리>는 섹션 4 전시장인 ‘작은 역사전: 임응식과 초기 부산사진’에서 볼 수 있다. (02)2022-06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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