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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이 시대의 김광석들 ‘일어나’

등록 2012-01-10 16:22수정 2012-01-10 20:15

서정민의 음악다방

청동으로 돋을새김한 그는 먼곳을 바라보며 노래하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투박하지만 단단한 질그릇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생전에 1000회 공연을 펼쳤던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 앞마당에 노래비로 남은 그는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을 1001번째 공연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 놓아둔 장미꽃, 소주병, 붕어빵 안주로 표 값을 대신했다.

가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6년이 흐른 지난 6일 저녁, 고인을 기리는 노래비를 지나, 계단을 따라 내려간 소극장 안에선 색다른 공연이 펼쳐졌다. 일반인들이 고인의 노래를 부르는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2’. 예선을 통과한 12팀이 자신의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는 형형색색으로 되살아났다. ‘사랑했지만’은 20대 청춘남녀들의 싱그러운 아카펠라 화음으로, ‘일어나’는 두 30대 연극배우의 흥겨운 노래와 랩의 어우러짐으로 새 옷을 입었다. 작은 라이브 카페 주인이자 유일한 출연가수라는 40대 남성은 김광석을 닮은 음색으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불렀다. 무대 뒤 커다란 흑백사진 속 김광석은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참가자들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모니카상 9팀, 기타상 2팀, 김광석상 1팀 등 전원 상장과 부상을 받은 참가자들과 김민기, 강승원, 박학기, 동물원, 이은미, 권진원, 강인봉, 박승화 등 고인의 동료, 선후배 모두 무대에 올라 ‘나의 노래’와 ‘일어나’를 합창했다. 아빠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부터 딸, 며느리와 함께 온 75살 할머니까지 어우러진 관객들도 일어나 노래했다. 박영숙(36)씨는 “팬카페 회원으로 매년 추모행사를 열어왔는데, 오늘은 축제의 장으로 거듭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참가자들과 맥주잔을 기울였다. 건반을 치며 여리고 투명한 목소리로 ‘서른 즈음에’를 불러 김광석상을 받은 김건우(28)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거나 미디(컴퓨터 음악) 반주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며 어느덧 서른 즈음이 됐는데, 언젠가 꼭 내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구에서 기타를 둘러매고 올라온 김종광(42)씨는 “회사도 다니고 장사도 해봤지만 내 길이 아니다 싶어 다 그만두고 음반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서정민 대중문화팀 기자
서정민 대중문화팀 기자
이날 참가자와 관객 중에는 김광석 팬클럽 ‘둥근소리’, 네이버 카페 ‘김광석 매니아’, 다음 카페 ‘끝나지 않은 노래’ 등의 회원도 상당수였다. 근래 들어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팬이 된 이들도 많다고 한다. 아이돌 가수들의 현란한 춤과 음악, <나는 가수다>로 상징되는 넘치는 편곡과 가창력이 주목받는 시대에도 김광석이 한결같이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대중음악은 사람들을 쫓아가는 전략을 취하기 마련이지만, 광석이 노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지나가다 마주치고 좋아하게 돼요. 서른뿐 아니라 마흔, 쉰, 예순이 되면 ‘서른 즈음에’를 만나고, 본인은 물론 친구, 연인, 자식이 군대 가면 ‘이등병의 편지’를 만나는 식이죠.” 김광석의 오랜 벗 박학기의 말이다.

그렇다. 김광석의 노래에는 삶이, 사람이 있다. <나는 가수다>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감탄은 순간이고 감동은 영원한 법이다. 이 시대의 김광석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서정민 대중문화팀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황윤호씨 제공

 

# 이번주부터 대중음악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전하는 ‘서정민의 음악다방’이 격주로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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