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대나무 줄기마다 뻗치는 푸른 기운

등록 2012-01-17 21:08

<월하죽림도>(130×375㎝), 10폭 병풍에 그린 수묵화, 1920년대.
<월하죽림도>(130×375㎝), 10폭 병풍에 그린 수묵화, 1920년대.
주목! 이 작품 해강 김규진의 ‘월하죽림도’
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 묵죽화는 조선 선비들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강세황, 이정, 유덕장 등이 뛰어났고, 근대기에는 해강 김규진(1868~1933)을 명인으로 꼽는다. 그는 특히 굵은 줄기를 지닌 통죽(筒竹)의 묘사에 빼어났다.

지금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마련된 ‘소호와 해강의 난죽’전에서 우선 눈을 사로잡는 명품이 바로 해강의 <월하죽림도>(月下竹林圖)다. 통죽을 잘 그린 그의 화풍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비단 병풍 위에 달밤의 굵은 대숲을 한가득 그렸다.

대나무는 예로부터 곧은 절개의 상징이다. ‘죽보평안’(竹報平安)이라 하여 평안을 가져다준다는 뜻도 지녔다. 이 그림에서 대나무 몸체는 작가 특유의 가는 띠 모양으로 둥글게 돌렸다. 전면의 잎은 짙은 묵을, 후면의 잎은 엷은 묵을 써 공간감을 나타냈다. 잎들은 모두 아래를 향하고, 아래쪽엔 쑥쑥 올라온 죽순을 그려 대숲의 싱그러움을 드러낸다. 달빛 아래 힘차게 올라온 죽순은 다산을 뜻하는 상서로운 기운이다. 소설가 김훈씨는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보고 “대나무 줄기의 담먹이 검은 색이긴 하지만, 푸른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넘치는 필력 등으로 보아 창작 활동이 왕성하던 1920년대 장년기 작품으로 보인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굵은 대가 무더기로 모여 자라는 것은 ‘봉황죽’(鳳凰竹)이라는 품종으로 중국 남부에 많다”며 “10대 시절 청나라에 유학했던 해강이 현지에서 본 대나무를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귀띔했다. 시서화에 능한 해강답게 그림 왼쪽 아래에 “가을 소리 귀에 가득한데 찾아오는 이 없네/ 거문고 타고 긴 휘파람 불 적에 달 떠 올라오네.”(滿耳秋聲人不到 彈琴長嘯月來時)라는 멋진 시구를 써넣었다. 시구 끝에 해강 자신이 ‘금강산 주인’이라는 뜻의 호인 ‘만이천봉주인’을 적은 것도 눈에 띈다.

미술사가인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화면구성이 호방하며 붓질도 대담하다”며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창작 태도가 신선하다”고 평했다.

영친왕 이은에게 글씨를 가르쳤던 해강은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모두 잘 썼으며, 금강산 구룡폭 옆 암벽에 ‘미륵불’(彌勒佛)이란 큰 글씨를 새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이번 전시에서는 해강의 묵죽화 13점과 조선 말기 난 그림의 대가로 꼽히는 소호 김응원(1855~1921)의 작품 20점도 감상할 수 있다. 2월19일까지. (02)720-1524.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판 학고재갤러리 제공


한주의 전시회 출품작들 가운데 독특한 사연이 있거나 주목받는 화제작을 골라 집중 소개합니다. 작품의 남다른 가치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해드립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