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광정(1962~2008) <한겨레> 자료사진
‘4년전 작고’ 마지막 연출작
배우 24명 출연료 없이 공연
사연 많은 도시인 하루 그려
“참여 원한 후배들 너무 많아”
배우 24명 출연료 없이 공연
사연 많은 도시인 하루 그려
“참여 원한 후배들 너무 많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요.”
2008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동료 박광정을 떠올리며 배우 최용민은 말했다. 고인을 기리며 동료 배우들이 만든 연극 <서울노트>가 다음달 2~12일 서울 동숭동 정보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배우이자 연출가였던 박광정은 영화 <넘버 3>,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드라마 <하얀 거탑>, <뉴하트> 등에서 보여 준 개성 있는 연기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그가 끝까지 가장 애정을 쏟은 건 연극 무대였다. <서울노트>는 생전의 그가 애착을 갖고 연출했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 재공연은 고인의 부인 최선영씨가 주축이 되어 준비했다. ‘박광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성기웅 연출가와 배우 최용민, 권해효, 박원상, 이성민, 민복기, 김중기 등 24명의 배우가 뭉쳤다. 연극과 영화, 방송을 오가며 서울 대학로에서 가장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배우들이지만, 모두들 출연료를 받지 않는다. 나이, 연기 스타일은 각양각색이어도, 박광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지난 26일 서울 혜화동의 혜화동연습실에서 막바지 공연 연습에 한창인, ‘박광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후배들 술을 잘 사주셨어요. 저도 무지하게 얻어먹었죠. 여기 있는 대부분의 배우들, 광정 선배님한테 술 한잔 안 얻어먹은 사람이 없을 거예요.”
최근 10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중인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 변호사 ‘박준’으로 출연한 배우 박원상은 “제가 처음 연극에서 주연을 한 <비언소>를 박광정 선배가 연출하셨다”며 그와의 인연을 털어놓았다. 96년부터 박광정과 인연을 맺은 민복기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차이무의 단원들과 함께 출연한다. “(이번 공연은) 출연 조건이 까다로웠어요. 최소한 한번 이상 같이 작업을 한 사람이어야 했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출연하고 싶어서 로비를 했다는 사람도 있고요.(웃음)”
<서울노트>는 한 갤러리 로비에서 일어나는 하루를 다뤘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서 만들어 내는 ‘하루’를 꼼꼼히 그린다. 속물스럽거나 나약한 도시인들이 마주치고 부딪히는 일상은 일본 영화 <도쿄 스토리>와 닮아 있다. 원래 등장인물은 17명인데, 박광정을 기리는 공연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잇따라 모여들어 출연자만 20명을 넘게 됐다. 그래서 더블, 트리플 캐스팅으로 번갈아 출연한다.
공연이 열리는 정보소극장은 생전 박광정씨가 운영을 맡았던 곳이다. 94석의 작은 극장에서 박씨와 동료 배우들은 연극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다. “이 극장에 오면 광정이 생각이 많이 나요. 같이 뒹굴고 작업하고 손님이 없을 땐 같이 아파하고 극장 앞에서 술도 마시고 했죠.”(최용민)
연출가 박광정의 빈자리를 이번에 대신 메운 성기웅 연출가는 “(박광정이) 코믹한 역을 여러 번 했지만, 사실 도시적이고 모던한 취향이 있었다. <서울노트>처럼 도시 사람들의 쿨한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성씨는 <서울노트>의 원작인 히라타 오리자의 <도쿄노트>를 번역하기도 했다.
“굉장히 조용한 연출가였어요. 배우들한테 맡기고, 큰 틀에서 벗어난 게 있으면 이야기하고.”(최용민)
“연출하면서 한마디도 안 했어요. 그래서 배우들은 ‘저 양반이 지금 잘 보고 있는 건지’ 더 안달이 나곤 했죠.”(민복기)
최씨와 민씨가 기억하는 박광정과 달리 이번 <서울노트>를 준비하는 성기웅 연출가는 적극적으로 배우들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성씨는 “처음엔 걱정도 했지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좋은 공연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연이은 대사 실수로 연습실에 폭소를 불러온 박원상도 “선배를 기리는 마음들이 모여 열심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재밌는 공연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02)762-0010.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박광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연극 <서울노트>의 한 장면. 2003~2008년 박광정이 연출해 5번이나 공연하며 애착을 보였던 작품이다. 고인의 부인 최선영씨와 최용민, 권해효, 박원상, 민복기 등 이름난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출연한다. 이다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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