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사연 전달자’ 사진가의 이번 사연 어머니

등록 2012-02-07 16:28수정 2012-02-08 15:21

사진가 임종진. 사진 곽윤섭 기자
사진가 임종진. 사진 곽윤섭 기자
여기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모습이 있다.

새벽 고창 장터에서 한 솥 가득 선지해장국을 끓여놓고 담배 한 대를 태워 문 오춘자 어머니, 노동운동을 하다가 주검으로 돌아 온 아들의 영정사진을 붙들고 웃음 짓는 김을선 어머니, 필리핀인 며느리 로카를 향해 반갑게 논길을 달려가는 나주의 이전금 어머니, 온갖 쓰레기 더미 위에서 얼굴 한가득 미소를 담아 꽃 인사를 건네는 캄보디아의 어머니도 있다.

‘달팽이 사진가’ 임종진(44)씨가 서울 통의동의 사진전문갤러리 류가헌에서 열고 있는 사진전 ‘어머니에 관한 4개의 기억, 또는 기록’ 속의 풍경이다. 그가 1995년부터 17년 동안 한국과 인도, 네팔, 티베트, 북한, 인도네시아, 이라크, 캄보디아 등 세계 8개국에서 어머니로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기록이다.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존재는 제가 세상 사람을 바라보는 커다란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손자에게 마냥 아늑하고 따뜻한 존재였던 외할머니와 자식들을 위해 삶의 질곡을 고스란히 짊어졌던 어머니의 모습은 늘 연민과 존중, 고마움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어머니들 역시 함부로 볼 수 없고 그대로 내 어머니처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국내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어머니들을 만나면서 제 가슴에 뭔가 뭉클거리게 하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모든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어머니’라는 주제를 빌려 피부색과 질병, 가난, 이념 등의 사회현상에서 나타나는 불편부당한 시선들을 무디게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전시는 작가가 세상 어머니의 얼굴과 몸짓에서 읽어낸 희로애락의 모습들이 52점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어머니, 웃으시다’, ‘살아내시다’, ‘맞서시다’, ‘우리가 벗은 허물’이라는 네 개의 작은 주제로 선보이고 있다. 그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누구는 빼고 누구는 넣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진 자체보다는 사연이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은 안 좋아도 이야기나 사연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을 골랐다. 또한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어머니들과 만난 사연과 추억들을 꼼꼼히 글로 남겼다. 그러면서 늦봄 문익환(1918~1994) 목사의 부인 고 박용길(1919~2011)씨와의 기분 좋은 일화를 들려준다.

임종진 사진전 <어머니에 관한 4개의 기억> 포스터 속 어머니.
임종진 사진전 <어머니에 관한 4개의 기억> 포스터 속 어머니.
임종진 사진전. 2003년 7월 이라크 바그다드
임종진 사진전. 2003년 7월 이라크 바그다드
임종진 사진전. 2000년 9월 전북 고창
임종진 사진전. 2000년 9월 전북 고창

“박용길 장로님이 웃으시는 사진 찍을 때 저는 배경 속 문 목사님의 그림을 한데 엮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크게 프린트를 해서 장로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진을 좋아하셨을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장로님 장례식 때 그 사진이 장례식장에 크게 걸렸더군요. 또 <한겨레신문>에 장례식 광고가 전면으로 나갔는데 그 사진을 전면배경으로 썼더라고요. 아마 문성근씨는 그 사진을 찍어 선물로 준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를 겁니다. 제 사진이 어느 누군가에게 잘 쓰일 때 너무 기분 좋습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피부색과 사는 처지는 다를지언정 작품 속의 어머니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결같이 따뜻하다. 그는 “사진을 ‘잘’ 찍으려는 욕심보다 충분한 교감의 시간을 갖고 서로 존재감을 느끼면서 사진에 담아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인들은 그를 ‘달팽이 사진가’라고 부른다.

“제 자신이 천천히, 깊게, 느리게 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사진에 담고 있기 때문에 붙여준 별명 같은데요. 저는 사진을 찍기 전의 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것 이전에 교감과 소통의 과정 자체가 사진행위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때로는 사진을 찍지 않아도 돼요. 그냥 마음이 가는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작가적 관점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스스로 작가라는 테두리에 넣어 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로 불리기보다는 ‘사연 전달자’ 또는 ‘이야기 전달자’로 남기를 원한다.

“저는 사진을 기막히게 잘 하는 사람보다는 사진이라는 행위를 통해 어떤 ‘쓰임’의 여지가 있는지를 더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공존과 공생의 의미로써 사진이 가진 특별한 역할이 있다고 보고요. 그것을 캄보디아에서 실험해봤고 나름 성과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작가라기보다는 그냥 ‘사연 전달자’가 제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월간 <말>지와 <한겨레신문> 등 언론사 기자로 사진을 시작한 임종진씨는 수차례의 방북취재의 여정에서 얻은 사진들로 2007년 첫 사진전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을 열었다. 그 후 엔지오 활동가로 나서서 캄보디아에 ‘달팽이 사진관’을 무료로 열고 8년간 도시빈민촌과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며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해왔다. 지난 2010년에는 그 기록을 모아 ‘캄보디아. 흙, 물, 바람 전’ 전시를 열기도 했다. 현재는 대안사진공간 ‘달팽이 사진골방’을 운영하면서 ‘천천히 깊게 느리게, 소통으로 사진하기’ 강의와 영정사진, 외국인노동자 가족사진을 무료로 촬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19일까지. (02)720-2010.

임종진 사진전. 2000년 10월 서울 마포
임종진 사진전. 2000년 10월 서울 마포
임종진 사진전. 2006년 7월 캄보디아 프놈펜
임종진 사진전. 2006년 7월 캄보디아 프놈펜
임종진 사진전. 2009년 8월 인도네시아
임종진 사진전. 2009년 8월 인도네시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집주인, 월세로 내놔도 잘나가는데 굳이 왜…
“황우석 제자들도 논문 조작…일부는 학위 받아 교수까지”
박근혜 “지역구 불출마” 밝히며 눈물 훔쳐
날씨 타는 박태환 ‘장대비도 괜찮아’
한국 호랑이와 시베리아 호랑이는 한 핏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