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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카메라들

등록 2012-02-21 15:55

사진가 박진영씨의 〈카메라들〉.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사진가 박진영씨의 〈카메라들〉.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박진영 개인전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
지난해 3월11일 오후 일본 역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가 미야기현 나토리시를 덮쳤다. 높이 10m에 이르는 ‘자연 괴물’은 태평양에 접해 푸른 빛 해변을 자랑하는 나토리시를 집어삼킨 뒤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토해냈다.

그가 5개월 후 뻘 투성이의 나토리시를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땅바닥에 흩어져 있거나 바람에 날리는 주인 없는 사진들과 그것을 수습하여 물로 씻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현재 가장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이 “가족 사진 한장”이었다.

이 사진 <카메라들>(14.7m, light jet print, 220x180cm, 2011)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진영(40)씨가 지난해 8월 나토리시의 폐허 속에서 수거한 카메라들을 모아 수십명이 사망한 한 초등학교 교실 바닥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주인 잃은 수십개의 카메라들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를 보여주지만 거대한 ‘죽음’ 앞에서 망각과 투쟁하는 사진적 존재를 제시한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일본대지진 현장을 몇 달간 돌면서 가장 통렬히 느꼈던 이 시대 사진의 의미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털어놓았다. 대형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그는 몇년째 사진 본연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묻는 ‘사진의 길’ 연작 작업에 매달려 있다.

그가 쓰레기장으로 변한 현장을 돌며 발견한 카메라 중 디지털 카메라는 10%도 되지 않았다. 디지털 카메라는 가볍고 컴팩트하고 외장이 튼튼하지 않아 쓰나미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거나 아예 다른 쓰레기더미와 섞여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혹 발견한 것들도 속이 펄로 가득차 터져 있었다.

그는 “좀 불편하나 필름이나 필름 카메라는 영원불변해 언제든지 복구가 가능하지만 편리하고 가벼운 디지털 기술은 자연의 힘 앞에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말했다.

“최신형 핸드폰을 사기 위해, 더 넓은 아파트를 사기 위해 아웅다웅 지지고 볶는 대한민국. 정녕 무엇이 스마트한 것인지 그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빨리빨리, 대충대충, 스마트가 판치는 한국 사회에 묵묵하고 느리지만 대형 카메라의 엄정한 시선으로 이 시대 사진의 의미를 되묻고 싶었습니다.”

 현재 박진영 작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를 열고 있다. 그가 지난해 3월부터 일본인 부인과 함께 극심한 교통정체와 도로 통제를 뚫고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연이은 원전유출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재난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건져올린 이야기들이다. ‘사건의 현장’이라고는 했지만 방송이나 언론에 소개된 극적인 장면이나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뼈대만 남은 3층 소방서 건물, 센다이현 중학교 음악실에서 발견한 트럼펫, 아이들의 책가방, 흔적 없이 사라진 사진관 자리, 버려진 음료수병, 사진액자 등 그가 일시정지 상태에서 포착한 찰나의 순간들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중앙대와 대학원에서 보도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한 박진영 작가는 문화방송 포토에세이 <사람>, 한국방송 <인물현대사>, <일요스페셜>에서 스틸 사진을 담당했으며, 2004년 조흥갤러리에서 사진전 ‘서울…간격의 사회’를 통해 작가(Area.Park)로 데뷔했다. 이후 금호미술관 등에서 네 번의 개인전, 독일에서 한국현대사진전 ‘패스트 포워드’(Fast Forward), 로댕 갤러리에서 ‘사춘기 징후’, 제1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사진 60년’, 서울시립미술관 ‘한국현대사진의 풍경’, 휴스턴 뮤지엄 ‘혼돈의 조화’(Chaotic Harmony), 대한국립박물관 ‘한국사진의 최전선’, 광주비엔날레 ‘연례보고’ 등 100여 회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일본 도쿄 근교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으며, 지역 외국인 신문인 <캄온뉴스>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전시는 3월13일까지. (02)544-7722.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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