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씨의 ‘카메라들’
주목! 이 작품
지난해 3월11일 오후 일본 역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지진과 높이 10m에 이르는 지진해일(쓰나미)이 해변도시 미야기현 나토리시를 덮쳤다. 5개월 뒤,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진영(40)씨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한 나토리시를 찾았을 때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땅바닥에 흩어져 있거나 바람에 날리는 주인 없는 사진들과 그것을 수습하여 물로 씻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현재 가장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가족 사진 한장”이었다.
이 사진 <카메라들>(14.7m, light jet print, 220×180㎝, 2011)은 몇년째 사진 본연의 존재 가치를 묻는 ‘사진의 길’ 연작 작업에 매달려 온 박씨가 지난해 8월 나토리시의 폐허 속에서 수거한 카메라들을 모아 수십명이 사망한 한 초등학교 교실 바닥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주인 잃은 카메라들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거대한 ‘죽음’ 앞에서 망각과 투쟁하는 사진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일본 대지진 현장을 몇달간 돌면서 가장 통렬히 느꼈던 이 시대 사진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했다. 그가 쓰나미 폐허에서 발견한 카메라 중 디지털 카메라는 10%도 되지 않았다. 가볍고 외장도 튼튼하지 않아 대부분이 해일에 휩쓸려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그는 “좀 불편하나 필름이나 필름카메라는 언제든 복구가 가능하지만 편리하고 가벼운 디지털 기술들은 자연의 힘 앞에 무용지물이 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금 서울 신사동 메종 에르메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개인전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3월13일까지)를 열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일본인 아내와 함께 극심한 교통정체와 도로통제를 뚫고 대지진과 지진해일, 그리고 연이은 원전유출 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재난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건져올린 이야기들이다. 센다이시 중학교 음악실에서 발견한 트럼펫, 아이들의 책가방, 버려진 사진액자 등 그가 일시정지 상태에서 포착한 찰나의 순간들이 담겼다. (02)544-7722.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아뜰리에 에르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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