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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0과 1로 마음껏 사운드놀이…8㎏ 빠졌어요”

등록 2012-02-26 21:23

밴드 ‘못’의 이이언
밴드 ‘못’의 이이언
록 걸작 평가 ‘못’ 2집 뒤 5년
전자음 내세운 파격 앨범 내
“주파수 조합·판 튀는 효과도
고통을 에너지원으로 완성”
첫 솔로앨범 낸 ‘못’의 이이언

얼마 전 서울 홍대 앞에서 우연히 만난 이 남자, 정말 얼굴이 반쪽이 돼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하고 물으려다 이내 그 해답을 찾고 질문을 삼켰다. 그의 손에는 앨범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이언의 첫 솔로 앨범 <길트-프리>.

이 남자, 밴드 못(MOT) 시절에도 그랬다. 거대하고 유기적인 구조물을 설계하고 축조해나가듯이 앨범 작업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그래서 자신 안의 에너지를 모두 고갈시켜버리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그렇게 만든 못의 1집(2004)과 2집(2007)은 독창성과 높은 완성도를 지닌 한국 록의 걸작이라는 평을 들었다.

지난 23일 만난 이이언의 얼굴은 그때보다는 좀 나아 보였다. 그는 “앨범 작업을 하느라 최근 6개월 새 8㎏이나 빠졌는데, 그중 5㎏은 막판 2개월 사이 빠진 것”이라며 “그래도 이달 초 앨범이 나온 뒤로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고 했다.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앨범이 왜 못이 아니라 솔로 음반일까? 못이 해체라도 한 걸까?

“못은 해체하지 않았어요. 못 3집도 이르면 내년에 낼 생각이에요. 하지만 못의 다른 멤버였던 지이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요.”

사정은 이렇다. 2008년 이이언은 후두염을 앓고 성대가 악화돼 노래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당연히 못은 상당기간 활동을 중단했다. 그동안 지이는 개인 사정으로 음악계를 떠났다. 데뷔 전 자신의 전공(컴퓨터공학)을 살려 유명 게임회사에서 일했던 지이는 고민 끝에 그쪽 업계의 스카우트 제의에 응했다.

그해 여름 이이언은 음악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처음 휴가를 떠났다. 대학교 3학년이던 1998년 음악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이후 거의 매일 공부하듯이 음악을 해온 그다. 미국 사는 친구를 찾아가 한달 반 동안 함께 바다낚시를 다녔다. 마음의 여유를 찾으니 다시 곡을 쓰고 싶어졌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음악테크놀로지(전문사 과정)를 공부하며 앨범 준비를 시작했다. 이번엔 가벼운 마음으로 하자는 생각에 못이 아닌 솔로 앨범으로 정했다. 정작 작업에 들어가니 욕심이 커져갔다. 못과는 다른 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애초 2009년 가을께로 정했던 발매 시점은 점점 미뤄져 결국 2012년으로 넘어왔다.

그의 말마따나 “고통을 에너지원으로 해서 완성된” 앨범은 못의 색깔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특유의 어둡고 음울한 정서는 못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이를 담은 사운드는 더욱 독창적이고 파격적으로 나아갔다.

“못은 기본적으로 밴드 음악이었어요. 기타, 베이스, 드럼 등 기본 요소를 토대로 전자음 효과를 더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솔로 음반은 전체 소리에 대한 구상만으로 철저하게 무에서 하나씩 쌓아나간 경우죠.”

이이언이 이번 앨범을 구성한 재료는 디지털 신호인 0과 1이다.

“우리가 시디나 엠피3 파일로 듣는 음악은 실제 연주를 재현한 디지털 신호로 이뤄져요.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세상이 0과 1로 이뤄진 매트릭스임을 자각한 주인공 ‘네오’가 매트릭스를 의지대로 변형하면서 절대자가 되잖아요. 저도 절대자까진 아니어도 0과 1을 마음껏 가지고 놀면서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보려 했어요. 일부러 시디가 튀는 듯한 효과를 넣고, 주파수를 조합해 기묘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죠.”

앨범에는 타이틀곡 ‘불릿프루프’ 등 10곡이 담겼다. 현진영의 ‘슬픈 마네킹’을 독특한 분위기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특이한 건 전곡 연주곡 버전을 따로 담은 시디 한장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보컬에 가려졌던 사운드 자체에 집중해서 들어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는 4월 말이나 5월 초 비주얼 아트와 결합한 공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앨범 수록곡을 라이브로 구현하기가 쉽진 않겠지만, 제대로 준비해보겠다”고 나지막하지만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엘리펀트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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