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국서 모은 신의 이미지
손으로 찢어 ‘망령’들 창조
“인간의 욕망이 만든 신상
되레 대중 옥죄는 데 쓰여”
손으로 찢어 ‘망령’들 창조
“인간의 욕망이 만든 신상
되레 대중 옥죄는 데 쓰여”
김기라 개인전 ‘공동선…’
인류가 이 땅에 무리지어 살면서부터 끊임없이 추구해온 가치는 공동선이었다. 공동체 전체를 위한 선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 원리였고, 국가와 종교, 도덕, 이데올로기의 모습으로 탄생과 소멸을 반복해왔다.
한국 미술판의 소장작가 김기라(39)씨는 최근 근작들에서 이런 통념을 단호히 부정한다. “공동선은 없었다. 그것은 망령이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1일부터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의 비영리공간 두산갤러리에서 시작한 그의 개인전 ‘공동선-모든 산에 오르라!’는 공동선의 허구를 까발리며 공동선의 원형을 묻는 작업들이다. 사진,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작업들로 사회와 개인의 실체를 탐구해온 그는 이 전시에서 공동선의 허울을 화두로 희극적 요소와 서사적 구조가 통합된 ‘스펙터’(망령)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공동선은 허구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욕망일 뿐이죠. 이를테면 신화나 신앙, 종교는 인간이 공동선을 추구하려고 고안한 것인데, 오히려 인간을 옥죄고 있잖아요. 요즘 교회를 보세요. 사원의 종교라기보다 종교의 사원으로 변모되어 버렸어요.”
전시장에서는 갖가지 신화와 신상 이미지가 결합한 괴물 같은 ‘스펙터’들을 만나게 된다. 인간 의식이 반영된 스펙터들은 마치 아홉 마리 뱀 머리를 가진 히드라와 프랑켄슈타인을 합성시킨 듯하다. 그리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헤라의 조각상, 간다라 불상 등으로 이뤄진 머리에, 헤라클레스와 예수의 가슴, 거대한 잉어 등으로 꾸며진 몸통, 아프리카 원시 부족 전사와 고대 이집트 신 등의 팔다리를 가진 21세기 신의 모습이다. 지난 8년간 세계 10여개국을 다니며 모은 500권 이상의 문화, 역사 등의 서적에서 발췌한 신화와 성상 이미지들을 재현한 뒤 찢어서 엮는 콜라주 기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축적된 신화·성상 이미지들을 해체, 변형한 작품들은 인간이 끝없이 스펙터를 창조해내는 한 결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은유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괴물 형상이나 인간이 만든 신의 모습이나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망령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성상을 만들거나 교회를 짓거나 신화로 기록해 남긴 모든 것들은 결국 신화와 종교에 기대어 인간이 만들고 섬겨왔던 것들이죠.”
작가의 설명대로 스펙터 이미지들은 인간의 욕망이 ‘공동선’을 내걸고 신상들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인간을 옥죄는 괴물을 창조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화나 종교, 사회, 경제 구조에 의해 파생된 이미지나 성상들이 인간의 존재와 삶을 확장시키기보다 되레 망령이 되어 보이지 않게 인간을 제약하고 욕망을 부추긴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스펙터 연작을 위한 밑그림인 드로잉에서도 이런 의도가 드러난다. 구체적인 이미지 없이 선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 스펙터는 이미지로 포장된 권위를 잃은 채 흐물흐물하고 몽롱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형광등을 구부려 ‘God 4give U, but I do not…’이란 영문 문장을 만든 설치작업도 스펙터의 또다른 모습으로 읽힌다. ‘너를 용서했지만, 나는 결코…’라는 뜻도 되지만 ‘신은 우리에게 4가지를 선물했다’는 중의적 해석도 가능하다. 기독교에서 신이 선물했다고 하는 3가지인 ‘믿음’ ‘소망’ ‘사랑’에 ‘불손하게도’ 작가는 ‘욕망’을 덧붙였다고 했다.
왜 전시제목을 ‘모든 산에 오르라!’라고 했을까? 산에 오르는 것 자체는 공동선이라는 영원히 풀지 못할 해답, 곧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래로 굴러떨어질 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큰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운명과 같은 것이리라. 29일까지. (02)708-505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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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터(망령) 연작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김기라 작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왜 전시제목을 ‘모든 산에 오르라!’라고 했을까? 산에 오르는 것 자체는 공동선이라는 영원히 풀지 못할 해답, 곧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래로 굴러떨어질 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큰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의 운명과 같은 것이리라. 29일까지. (02)708-505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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