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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비우기로 꽉 채워낸 ‘거장의 마술’

등록 2012-03-08 20:55수정 2012-03-08 23:48

오페라 <마술 피리>의 종반부 장면. 사랑하는 아내를 얻지 못하는 새잡이 파파게노(왼쪽)는 천생연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좌절감에 목을 매려 한다.
오페라 <마술 피리>의 종반부 장면. 사랑하는 아내를 얻지 못하는 새잡이 파파게노(왼쪽)는 천생연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좌절감에 목을 매려 한다.
피터 브룩의 오페라 ‘마술 피리’
무대에는 세트가 없다. 수직으로 선 60그루의 가늘고 길쭉한 대나무가 등장할 뿐이다. 나무들은 때로 위치를 옮겨 사각형의 성이 되었다가, 차가운 벽이 되기도 한다. 화려하고 정교한 모양새는 아니다. 복잡한 세트가 없는 공간에는 대나무와 피리, 단검 등 최소한의 소품과 7명의 성악가, 2명의 배우, 한 명의 피아니스트만이 소박하게 자리했다.

15~17일 서울 역삼동 엘지(LG)아트센터에 오르는 피터 브룩(87)의 오페라 <마술 피리>는 오페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다. 웅장한 무대에 짙은 분장과 화려한 의상의 배우들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단출한 무대에 최소한의 등장인물들이 극을 이어간다. 시녀들과 소년들 등 부수적인 캐릭터는 아예 삭제했다. 21개의 아리아도 15개로 줄었다. 공연 시간도 짧다. 2막으로 구성돼 보통 2시간 반 정도 공연했던 원작의 이야기 뼈대는 유지한 채, 90분으로 단축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대신 한 대의 피아노만이 무대를 지킨다. 피아노에도, 성악가들에게도 마이크를 달지 않았다. 마이크를 거치지 않은 자연스런 선율과 목소리가 1100석의 공연장을 채운다. 2010년 프랑스 초연과 유럽, 남미 투어를 거치면서 해외 공연리뷰에서는 ‘오페라라기보다, 피터 브룩만의 연극’이라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피아노 한대·성악가 7명뿐
150분짜리 90분으로 압축
‘연극적인 오페라’로 만들어
LG아트센터서 15일부터

줄이고 새로 손봤지만 내용은 원작의 큰 줄기 그대로다. ‘밤의 여왕’이 지배하는, 숲으로 둘러싸인 왕국이 배경이다. 잘생긴 외모의 ‘타미노’는 뱀에게 쫓기다 마술을 부리는 시녀들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타미노는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도술을 부리는 승려 ‘자라스트로’의 사원에 붙잡혀 있는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를 구하러 간다. 알고 보니 자라스트로는 폭군이 아니라 어진 성직자. 밤의 여왕이 악과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는 사악한 인물이다. 타미노와 파미나는 ‘불의 시련’, ‘물의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 파파게노도 천생연분의 파파게나를 아내로 얻는다. 밤의 여왕은 이들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파멸한다. 신을 찬양하는 합창이 울려 퍼지면서 막이 내린다.

1943년 연극 <닥터 파우스트>로 연출을 시작한 피터 브룩은 여든을 넘긴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공연계 거장이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70여편의 연극과 10여편의 오페라, 1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22살에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이 돼 <라보엠>, <살로메> 등을 연출했다. 미국 뉴욕에서 오페라 작업을 하던 40, 50년대에는 그 역시 웅장하고 화려한 오페라를 만들었다. 7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74년 부프 뒤 노르 극장을 인수한 뒤로는 소박하고 단순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

<마술 피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피터 브룩은 현재 다음달 파리에서 올릴 신작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고령의 그는 유럽 지역 이외의 투어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편이다. 피터 브룩은 오지 않지만, 이번 <마술 피리>에서는 ‘채우기보다는 비우기’를 택한 그의 작품 세계가 고스란히 구현된다. 연극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아리아가 나오는 오페라 연극’으로, 오페라를 즐기는 관객은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오페라’로 감상할 수 있다. 노래는 독일어, 대사는 프랑스어다.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02)2005-0114 .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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