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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30대 은퇴 부르는 ‘부상투성이 발레’

등록 2012-03-13 20:35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의 무용수들. 하지만 이들은 30대부터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고충을 안고 살아간다. 만성적으로 누적된 부상과 예기치 않은 사고는 짧은 직업 수명을 더욱 앞당긴다.  국립발레단 제공
무대 위 화려한 모습의 무용수들. 하지만 이들은 30대부터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고충을 안고 살아간다. 만성적으로 누적된 부상과 예기치 않은 사고는 짧은 직업 수명을 더욱 앞당긴다. 국립발레단 제공
후유증에 일찍 무대 떠나
관련직종 취업길도 좁아
보험영업으로 생계유지도
“직업전환 프로그램 필요”
하얀 불빛 반짝이는 무대 바로 옆, 조명도 닿지 않는 어두운 구석은 고일안(38)씨의 일터다. 여기서 그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긴장 어린 눈빛으로 주시한다.

국립발레단 재활트레이너인 고씨의 역할은 무용수들이 연습·공연 때 통증을 호소하면 바로 무대로 달려나가 얼음찜질, 마사지 등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다. 그는 5년 전까지만 해도 국립발레단 발레리노였다.

“2007년 10월 <뮤자게트> 연습 중 회전동작을 하다 왼쪽 무릎 연골 5개가 찢어졌어요. 2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막막했죠.”

당시 고씨는 세살배기 아들을 둔 가장이었다. 더욱 맘이 아팠던 건 그의 부인 역시 비슷한 부상으로 발레를 접어야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였던 부인은 2001년 <스파르타쿠스>를 연습하다 공중에 뜬 리프트 상태에서 추락해 전신에 큰 부상을 입었고, 치료를 받다가 결국 은퇴했다.

고씨는 춤을 접은 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시행한 직업전환프로그램을 2008년 이수했다. 재활트레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2개월 동안 해부학, 운동생리학 같은 이론 수업을 받고, 1년 동안 병원 실습을 했어요. 2009년 시험을 치러서 국립발레단에 채용됐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은 거였지만, 그땐 가장으로서 1년 넘게 돈을 벌지 못하니까 너무 괴로웠어요. 아내가 국립발레단 지도위원으로 일하면서 가정의 생계를 이어갔죠.”

그는 “원래 35살까지만 무용할 계획이었는데, 큰 부상 때문에 예상보다 일찍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와서 좌절감이 더 컸다”고 털어놓았다. 고씨의 말처럼 국내에서 대부분의 무용수들은 30대를 지나면 무용을 계속할지 그만둘지 고민하게 된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2007년 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직업무용수들의 21%가 30대 후반, 26.1%가 40대에 은퇴를 예상하고 있었다. 60~70대의 배우, 화가들이 여전히 활동하는 영화·연극·미술 장르 등과 달리 무용수들은 40대 이후까지 무대에 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축구 등 구기종목처럼 몸을 격렬하게 쓰고, 체력 소모가 심한 탓이다. 발레계 사람들은 “프로스포츠는 은퇴 시점이 빨라도 단기간 목돈을 손에 쥐고 떠날 수 있지만, 무용 쪽은 시장이 협소해 거의 맨몸으로 무대를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쌓인 부상 후유증에 지쳐 더 이른 나이에 춤을 그만두는 이들도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촉망받는 신인 발레리나였던 김영연(26)씨가 그렇다. 김씨는 부상 후유증으로 입단 1년 만인 2009년 발레단을 그만두고 체육교육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발레를 시작한 김씨는 직업발레리나로서 고전발레를 숙련한 뒤 모던발레를 본격적으로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극심한 다이어트와 잦은 부상에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며 “막상 직업 발레리나가 된 뒤에도 늘 몸이 아파 생각을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발목뼈가 부러졌을 때 제때 수술을 받지 않아 남은 뼛조각이 인대에 걸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때문에 항상 발목엔 염증이 생겼죠. 소염제와 진통제를 달고 살면서 버텼는데 어느 순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처럼 이른 나이에 춤을 시작한 무용수들은 자주 부상에 시달려도 공연 스케줄과 콩쿠르 준비 등으로 충분한 치료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조기 은퇴가 사실상 강제되는데다, 부상 등 복병도 도사리고 있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국내 무용수들의 은퇴 뒤 처우 대책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2007년 조사를 보면, 66.8%의 무용수들이 은퇴 뒤에도 무용과 관련한 직업을 이어가고 싶다고 답했다. 갑작스럽게 그만뒀지만 발레단에서 새 직업을 갖게 된 고씨나, 20대 초반 체육교육 분야에서 새 진로를 찾은 김씨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국립발레단 쪽 설명을 들어보면, 그만둔 무용수들 대다수는 학교나 학원에서 무용 강사 자리를 찾는다. 하지만 그나마도 일자리가 제한돼 있어 빚을 내서 무용 학원을 차리는 이들도 있다. 자영업에 뛰어들거나, 보험 설계 영업처럼 긴 직업훈련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무용수들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고씨가 도움을 받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직업전환 프로그램은 2007~2009년 시행되다가 2010년부터는 중단됐다. 체계적인 직업 교육을 받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현재로선 기대하기 힘든 셈이다. 센터 쪽은 “문화부의 예산 삭감으로 2010년부터 사업 승인이 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센터 쪽 관계자는 “과거 사업 기간에는 프로그램을 통한 직업 전환율이 높지는 않았어도 지속적으로 시행하면서 좀더 효율적이고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계획하려 했었다”며 “지난해, 올해에도 직업전환 프로그램의 재시행을 주장했지만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발레계에서는 유럽, 미국, 캐나다 등에서 무용수의 복지를 위해 운영되는 직업전환센터 시스템을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현지 직업전환센터가 은퇴한 무용수들의 직업교육료를 부담하는 등 사회적 지원을 통해 관련 분야나 다른 전문직 업무로 안정적인 이동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다른 직종에서는 한창 일할 나이에 한국 무용수들은 은퇴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직업 무용수들의 은퇴 이후를 보장할 방안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무용수들은 계속 배출되는데, 직업발레단 수가 너무 적어 은퇴 뒤 사설 학원을 여는 것 말고는 역량과 경험을 전수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유럽처럼 지역에 기반한 발레단을 육성해 무용수들의 직업 안정은 물론 발레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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