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남의 손끝에 실린 북의 선율 ‘평화의 하모니’

등록 2012-03-15 20:45수정 2012-03-17 14:06

정명훈-북 교향악단 파리협연
14일 밤(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클래식 공연장인 살 플레옐 콘서트홀은 로비를 가득 메운 청중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예정된 음악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매표소 앞으로 긴 줄이 이어졌다. 주최쪽은 곧 1900석 전석이 매진되었음을 알렸다.

지휘자 정명훈과 북한 20대 젊은이들이 꾸린 은하수 교향악단의 첫 만남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은하수 교향악단과 정명훈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이날 합동연주는 뜨거운 갈채 속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 전부터 취재 경쟁이 뜨거웠다. <라디오 프랑스>, 예술문화방송 <아르테> 등 현지 방송·잡지사 기자들이 몰려나왔고, 남북한 취재진도 음악홀 안팎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음악회 직전에는, 프랑스 문화장관인 프레데릭 미테랑이 무대에 등장해 “음악으로 통일된 이 장소를 축하한다”고 입을 열었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남북한이 음악 안에서 만나는 장을 만든 데 대해 그도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음악회 1부 순서는 북한 은하수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꾸며졌다. 대부분 해외에서 유학한 단원 70여명의 기량과 앙상블은 완벽했다. 연주는 힘이 넘쳤고, 선율과 리듬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첫 곡 <젊은 곡예 아가씨>는 전통 민요 리듬을 주제로 했는데, 관악기와 타악기의 화려함이 축제 분위기를 내는 데 제격이었다. 두 번째 곡 <두 개의 전통 악기와 오케스트라>에는 한복 차림의 가야금·해금 주자가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정적 운율, 경쾌함과 순진함이 깃든 분위기, 연주자의 기교까지 합쳐져 탄성을 자아냈다.

전통-서구음악 앙상블 완벽
한국적 클래식 가능성 보여

1900석 매진…네번의 커튼콜
청중들 “북한 음악, 드라마틱”

이들의 음악은 클래식으로도 충분히 한국 음악의 정신성을 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서구 음악과 전통 음악의 섣부른 조합이 줄 수 있는 어색함은 찾기 힘들었다. 한국인 아니면 할 수 없는 음악이자 서구 클래식 음악의 관점에서 보아도 손색 없는 균형미가 돋보였다. 1부 마지막 순서로 북한 바이올리니스트 문경진이 생상스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를 들려주었다. 그는 연주를 마치고 <아리랑> 선율을 주제로 한 솔로 연주도 선보여 한국 관객들의 가슴이 뛰게 만들었다. 1부가 끝난 뒤 쉬는 시간 만난 현지 관객들은 “처음 듣는 북한 음악이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2부 무대는 웅장함 자체였다. 지휘자 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니 단원들도 함께 무대에 올라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연주했다. 브람스 특유의 장엄하고 굵직한 음색, 긴장으로 치닫는 크레센도 뒤에는 우수에 깃든 평온하면서도 비감 어린 장면이 펼쳐졌다. 한가롭고 서정적인 춤곡 풍 리듬이 남북한 사람들의 닫히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남북한의 불행했던 과거와 아직 해소되지 못한 긴장감을 딛고서 거룩한 휴머니즘으로 이 모든 불안과 갈등을 씻고, 희망이 있는 미래로 나아가는 대장정, 그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의미로 다가왔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메시지를 충실히 전해주는 연주를 청중은 숨죽이며 바라보았고, 악장이 끝날 때마다 이례적으로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을 끝내고 네 차례 커튼콜이 이어지자 지휘자 정명훈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남과 북이 정치적으로는 두 나라이지만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선율”이라며 <아리랑>을 편곡한 오케스트라 곡과 비제의 <카르멘> 서곡을 앙코르 연주로 들려주었다.

음악은 모든 이념을 뛰어넘는 위대한 힘이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역사적인 감동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견윤성 피아니스트

파리 아파소나타 소리사랑협회 음악감독

갸니시 음악원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아빠의 30대 여친에게 20대 딸이 보내는 편지
“전 법무비서관도 최종석 증거인멸 지시 진술말라고 해”
도요토미 히데요시 “나는 태양의 아들…조선의 국왕이여 알현하라”
세종시 민주당 주자 이해찬? 한명숙?
정치인들, ‘머리 나쁜’ 새 만큼만 따라 해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