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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남북 경계에 선 이
오직 탈북자뿐일까

등록 2012-03-18 20:09

연극 `목란언니’
연극 `목란언니’
[리뷰] 연극 `목란언니’
극의 등장인물 가운데 어느 누구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연한 사고로 남한에 오게 된 북한 주민 조목란은 몇 푼 안 되는 정착금까지 사기를 당해 날려 버린다. 룸살롱을 운영해 자식들을 키워 낸 조대자는 제 가족의 이익만 챙긴다. 여기에 실연의 상처로 우울증에 걸린 역사학자 허태산, 대학에서 과가 폐지돼 술로 매일을 견디는 철학교수 허태강, 무명 작가의 설움을 벗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허태양이 끼어든다.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북한 이탈 주민 조목란의 ‘결핍’이 이야기 중심이지만, 그가 맞닥뜨리는 남한 사람들 역시 하나같이 지친 모습으로 서로 다투고, 화를 내고, 엉엉 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렇게 잔뜩 성이 난 인물들을 보는 객석에선 폭소가 터져나온다는 점이다.

연극 <목란언니>의 주인공 조목란은 북한에 있는 부모가 청진으로 추방됐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돌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목란은 우울증에 시달리는 허태산의 간병인으로 취직한다. 대자는 올곧은 성격의 목란이 아들 태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북에 보낼 5000만원’을 내걸고 둘을 결혼시키려 한다. 하지만 대자의 사업이 망하면서 목란은 북한에 돌아갈 방편을 잃고 낙심한다.

암울한 내용인데도 <목란언니>는 재밌다. 낯선 언어로 이뤄진 맛깔스러운 대사 덕이 크다. 실제 북한 이탈 주민인 채수린씨가 직접 지도했다는 생경한 북한말을 듣는 맛이 있다. 배우들이 한국어와 어설픈 영어를 섞어 대화하는 어색한 순간에도 관객들은 소리 내 웃는다. 이런 엉뚱한 모습이 극중 태양이 구상하는 시나리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시나리오에서 여러 차례 수정되는 베트남 전쟁의 한 순간도 실상은 끔찍했을지 모르지만, 연극 속에선 자연스럽게 ‘웃기는’ 장면이 된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지난해부터 마련한 기획 연극 ‘경계인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이 시리즈는 남한 사람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낯선, 남북한 경계에 선 북한 이탈 주민을 중심으로 극을 풀어간다. 연극 공연장을 배경 삼아 무대와 객석,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묻는 <디 오써>, 한국과 일본 사이 경계인으로 살아온 재일동포들의 이야기 <백년, 바람의 동료들>이 앞서 지난해 공연됐다. <목란언니>를 보고 ‘북한 이탈 주민’이란 소재에 먼저 눈길이 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은 같은 말을 쓰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북한 사람들 모두에게 ‘우리’의 경계를 묻는다. 다음달 7일까지. (02)708-5001.

박보미 기자,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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