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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지하 탄광과 고공 크레인
그 안에서 무슨 일 있었나

등록 2012-03-22 20:42수정 2012-03-23 11:30

연극 ‘878미터의 봄’
연극 ‘878미터의 봄’
[리뷰] 연극 ‘878미터의 봄’
878m는 지상으로 올라간 높이가 아니라 지하로 뻗은 길이다. 연극 <878미터의 봄>에서는 작품 배경인, 지금은 폐쇄된 탄광 막장의 깊이를 의미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지하 878m에 갇힌 광부를 구출하지 않았던, 냉혹한 비밀을 말하기도 한다. 지하로 향한 깊이는 지상 위의 사투와 연결된다. 그 높이가 878m는 아니지만, 노동자 ‘김철강’이 타워 크레인 위에서 벌이는 고공농성 소식은 ‘막다른 곳에 다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서 탄광촌의 비밀과 접점을 찾는다. 17년 전 탄광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인부 ‘용만’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다. 사고 뒤 마을을 떠난 용만의 아들 ‘준기’는 방송국 프로듀서가 됐고 카지노가 들어선 고향을 취재하기 위해 17년만에 돌아오면서 연극은 시작된다. 아버지의 동료였던 ‘기철’은 카지노 게임에 중독된 폐인, ‘근석’은 치매에 걸린 노인이 되어있었다. 근석의 딸이자 준기의 친구인 ‘우영’은 카지노 딜러다.

탄광촌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선 카지노가 현재 이들 삶의 중심이다. 과거의 잘못을 감추려는 기철, 근석과 그 잘못을 대신 짊어지려는 우영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준기만 몰랐던 비밀이 차츰 벗겨진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기철과 근석, 우영은 준기에게 사죄를 구한다. 한편 방송국 피디 준기가 만들다 ‘외압’ 때문에 방송되지 못한 고공농성 이야기는 마지막 한 장면을 빼 놓고는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채 소리로만 전해지는데, 작품에서 현재의 ‘죄책감’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난 일의 피해자였던 준기는 취재하던 사건에서 결국 손을 뗀 이후 농성자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보이는지 극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무대 뒷배경 세트에 김철강의 모습이 나타나 관객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한현주 작가는 조세희 작가의 사진집 <침묵의 뿌리>를 보고 ‘탄광’의 슬픈 속성을 다루는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인간의 일회적인 노동을 이용해 땅을 긁어내고 파괴하는, 폭력적인 성격의 탄광촌에 관심이 갔고 탄광이 사라진 자리에 ‘한탕’의 욕망이 들끓는 카지노가 들어섰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한다.

 연극은 무거운 주제를 추리극 형식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 지난달 공연한 <안티고네>에서 처연하면서도 비장한 ‘안티고네’를 인상적으로 연기한 박윤정은 비밀의 중심에 있는 우영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중견배우 강애심은 준기의 친구인 형사 ‘동구’의 어머니로 출연해 완벽한 강원도 사투리 연기를 선보이며 어두운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그때,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를 따라가는 동안, 궁지에 몰리고 결국은 사라져 가는 낮은 이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안타까움과 애정 어린 시선이 묻어나온다. 한 작가는 쌍용차 파업 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류주연 연출. 박윤정, 강애심, 박상종 등 출연. 다음달 8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사진 남산예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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