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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백남준과 스승 존 케이지
두 거장이 빚은 ‘미지의 소리’

등록 2012-03-22 20:55

존 케이지의 탄생 100돌과 그의 제자 백남준의 탄생 80돌을 맞아 9일부터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엑스-사운드’전에 전시된 백남준의 <총체 피아노>
존 케이지의 탄생 100돌과 그의 제자 백남준의 탄생 80돌을 맞아 9일부터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엑스-사운드’전에 전시된 백남준의 <총체 피아노>
‘엑스-사운드’ 특별전
1952년 8월29일 미국 뉴욕주 우드스탁의 한 콘서트홀에서 현대음악사에 획을 그은 연주회가 열렸다. 미국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1926~1996)가 한 전위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세계 초연하는 무대였다. 튜더는 피아노 앞에 앉은 뒤 조용히 뚜껑을 열고는 몇분 동안 시계만 바라보다가 뚜껑을 닫고 무대를 떠났다. 존 케이지(1912~1992)의 유명한 ‘우연성의 음악’ 이론을 담은 곡 <4분33초>였다. 세 악장으로 이뤄진 악보에는 음표 대신 ‘TACET’(조용히)라는 악상만이 적혀 있었다. 4분33초 동안 연주하지 말고 침묵하고 있으라는 뜻이었다. 존 케이지는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들의 기침소리, 웅성거림, 빗소리, 침묵 또한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58년 독일로 건너온 백남준(1932~2006)은 다름슈타트에서 열린 존 케이지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그는 존 케이지가 데이비드 튜더와 함께 꾸민 음악회에서 <4분33초>를 듣고 그의 표현대로 “열성분자로 돌변했다.” 백남준은 독일의 전위예술그룹 ‘플럭서스’처럼 존 케이지의 선(禪)사상과 실험음악의 세례를 받았다. 이듬해 8월 갤러리22에서 백남준은 첫 퍼포먼스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 리코더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을 선보였다. 그는 깡통을 차서 유리판을 깨고, 그 유리로 달걀과 장난감을 쳤다. 녹음 테이프에는 오토바이의 굉음과 베토벤의 교향곡, 독일 가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사이렌 소리 등이 울려 퍼졌다. 백남준은 피아노를 때려 부쉈고 관객들은 경악했다.

존 케이지의 탄생 100돌과 그의 제자 백남준의 탄생 80돌을 맞아 9일부터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엑스-사운드’전에 전시된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
존 케이지의 탄생 100돌과 그의 제자 백남준의 탄생 80돌을 맞아 9일부터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엑스-사운드’전에 전시된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
존 케이지 ‘장치된 피아노’
백남준의 ‘총체피아노’ 등
사운드아트 실험작 풍성

백남준은 1962년 한 대담에서 “내 삶은 1958년 8월 저녁 다름슈타트에서 시작되었다. 내게는 1957년이 ‘기원전’ 1년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존 케이지가 죽은 이듬해인 1993년을 ‘기원후’ 1년으로 정의하며 스승에 대한 경외심을 털어놓았다.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올해 백남준 탄생 80돌과 존 케이지 탄생 100돌을 맞아 9일부터 특별전 ‘엑스-사운드(x-sound):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를 열고 있다. 두 거장의 역사적인 만남이 오늘날 사운드아트(소리를 이용한 전위예술)에 남긴 잔향과 후배 현대예술가들의 실험을 맛보는 자리이다. 무엇보다 소리의 틀을 깨고자 했던 두 거장이 남긴 예술적인 가치를 짚어볼 수 있다.

전시회 제목 ‘x-sound’는 미지(x)의 소리, 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몰아내는(ex-pel) 소리, 확장된(ex-panded) 소리를 아우르는 조어이다. 전시회를 상징하는 작품으로는 존 케이지가 발레곡을 작곡하려고 만든 <장치된 피아노>(1946)와 백남준이 스승의 작품을 오마주한 <총체 피아노>(1958)를 꼽을 수 있다. <장치된 피아노>는 존 케이지가 피아노 현 사이사이에 나사못, 볼트, 너트, 종잇조각, 고무지우개 따위를 쑤셔 넣거나 해머에 부착한 작업이다. 건반을 누르면 현에 끼웠던 나사못 따위가 튀어나와 다른 현에 부딪히며 기묘한 소리를 낸다. 만프레드 몬트베의 1963년 사진 자료로 전시된 백남준의 <총체 피아노>는 존 케이지보다 훨씬 실험적이면서 총체적인 감각을 자극한다. 건반을 누르면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고 전구에 불이 들어오고 헤어드라이기가 작동해 발을 간지럽힌다. 국악인 황병기씨는 2009년 이 작품을 보고 “서구의 고상한 것들을 다 엎어버렸다. 느닷없이 자동차 소리가 난다거나, 원시적인 것과 문명적인 것을 비빔질 해놓았다”고 평한 바 있다.

전시장 입구 왼쪽에 놓인 백남준의 작은 비디오 설치작품 <새장 속의 케이지>(1990)도 흥미롭다. 존 케이지의 이름 케이지(Cage)가 ‘새장’이라는 뜻을 차용해 ‘케이지를 새장에 가둔’ 작업이다. 존 케이지가 현대예술에 남긴 위대한 유산은 후배 예술가들에게는 큰 과제였다. 백남준은 그 존 케이지를 비디오 영상에 담아 새장에 가두고 그 아래 새똥처럼 부서진 피아노 건반 조각들을 뿌려놓았다. “나는 이제 존 케이지의 영향에서 벗어났다”는 선언인 셈이다.

백남준의 1959년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초연 사진과 1973년 존 케이지의 <4분33초> 연주 장면을 백남준이 비디오로 녹화한 영상 등도 나왔다. 이와 함께 오토모 요시히데의 빈 턴테이블을 이용한 <위드 아웃 레코드>(2008), 하룬 미르자의 201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 <백페이드 5>, 김기철 작가의 <소리 보기-비>(2012) 등 현대작가 12명이 청각을 통해 시각을 확장한 다양한 실험들도 볼 수 있다. 7월1일까지. (031)201-8512.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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