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어(2008)
영국 젊은 예술가그룹의 스승
신작들 아시아 최초로 공개
신작들 아시아 최초로 공개
“가장 일상적인 사물들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굉장히 일상적이기 때문에 자칫 우리가 놓칠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의 특별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 개념미술의 선구적 작가이자 미술교육 혁신가로 꼽히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71·사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고 있는 자신의 개인전 ‘단어·이미지·열망’을 둘러보고 갔다. 그는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현재 영국 현대미술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맡고 있는 ‘영국의 젊은 예술가 그룹 YBA’(영 브리티시 아티스츠)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1990년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 테이트 브리튼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고,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1994)의 대규모 설치 프로젝트를 비롯한 수많은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올해 런던 올림픽의 해를 맞아 특별기획한 이 전시는 작가의 50년 작품 활동이 집약된 2007년 이후의 신작 시리즈를 아시아 처음 선보이는 대규모 개인전. 안경·의자·전구·옷걸이·소화기 등 낯익은 일상 사물들의 이미지와 추상적 단어를 결합한 ‘기호놀이’ 같은 신작 회화 20여점과 대형 조각 1점이 내걸렸다. 1970년대부터 사물, 이미지에 대한 그의 관심이 ‘언어(텍스트)’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작품 (2010)는 붉은 바탕에 원색의 알파벳 대문자 ‘A·R·T’를 화면 가득 그린 뒤, 마르셀 뒤샹(1887~1968)의 개념미술 작품인 <샘>의 소변기, 창문틀, 붓통 등을 그려넣었다. 또 <열망>(2008)은 알파벳 대문자 ‘D·E·S·I·R·E’를 가득 채운 대형 화면에 음악의 템포를 나타내는 기구인 메트로놈, 물컵, 음료수 캔, 슬리퍼, 서랍 등 일상 소재들을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결합시키고 있다.
추상적인 글자와 낯익은 이미지들 간의 함수 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서 현대인의 삶과 내면이 압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가 지난 15일 서울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예술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라고 한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여기 제 작품에 수갑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실 이 공간 안에 수갑이 실제로 존재하진 않지만 회화를 통해서 수갑의 존재를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회화가 가진 가장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 공간 안에서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죠.”
본전시를 보기 전에 들머리에 마련된, 작가의 작품세계를 간추려 보여주는 ‘엠시엠’(Michael Craig-Martin) 공간을 미리 찾는 것이 좋다. 데이미언 허스트가 학생 시절 “제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고백했던, 선반 위에 물잔을 올려놓은 설치작품 <떡갈나무>(1973)부터 최근 설치작까지 간략한 설명과 함께 작품 일대기를 모아놓았다. 4월29일까지. (02)2287-35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판 사진 갤러리 현대 제공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71)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