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114.5×219㎝, 2012)
[주목! 이 작품] 공성훈의 ‘낚시’
어두운 밤바다, 한 사내가 낚시를 하고 있다. 파도는 삼킬 듯 바위를 때리고 저 멀리서 거대한 너울이 다가오건만, 그는 꿈쩍도 않는다. 칠흑같은 어둠을 찢고 나온 한 줄기 빛이 기묘한 사투를 지켜본다. 사내는 험한 밤바다에서 무엇을 낚으려는 걸까?
서울 수송동 오시아이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공성훈(47·성균관대 미술학과 교수) 작가의 개인전 ‘바다’의 전시장에 내걸린 유화 <낚시>(114.5×219㎝, 2012)의 풍경이다. “저런 데서 무엇을 낚을 수 있겠어요. 싸우고 있는 것이죠.”
공성훈 작가의 심드렁한 설명처럼 그림 속 사내는 지금 헛된 것을 바라는 것일까?
<낚시>는 작가가 지난해 가을 제주도에서 한달간 머물면서 보고 느낀 풍경을 묵시록적인 시선으로 담아낸 작업이다. 섬 특유의 밤바다 정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듯하지만 어쩐지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 그가 겪고 있는 일상의 고통이나 불안한 심리,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적 비애감 등을 알레고리처럼 숨겨놓은 것은 아닐까?
“낚시하는 사내와 저를 동일시한다면, 작가란 저런 곳에서 낚시를 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곧 태풍이 몰아닥치고 파도가 거세게 치는 데서 무언가 하나 건져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작가는 “제주 용두암 해안에 나가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떤 계시라도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이 작품 또한 그의 말처럼,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가짜 풍경임을 일깨워줌으로써 환영의 또다른 역설과 냉소를 보여주는 셈이다.
낯익으면서도 기이하고 낯선 풍경-작가는 “가짜 현실”이라고 했다-은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의 거장 카스파르 다피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안개바다를 굽어보는 산행가>(1818)와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1541~1614)의 풍경화 <톨레도 풍경>(1597~1599년경) 등을 떠올리게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와 자연의 고독한 싸움을 연상하는 관객들도 있을 법하다.
‘바다’전에서는 제주도의 장대하고 푸른 풍정을 현실과 이상의 다차원적 시선으로 옮겨놓은 대형 풍경화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이 녹아 ‘고슴도치의 거리’를 유지하는 풍경 속에는 담배 피우고 돌 던지고 촛불을 켜는 행위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우울함을 담아내려는 알레고리도 숨겨져 있다. 4월25일까지. (02)734-0440~1.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도판 사진 오시아이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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