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메리칸 환갑’
[리뷰] 연극 `아메리칸 환갑’
아버지 ‘전민석’은 집을 나갔다가 15년 만인 자신의 환갑 무렵에 불쑥 나타난다. 나머지 가족이 준비하는 환갑잔치가 순탄한 모습일 리 없다.
일 때문에 바빠 다른 가족들과 전화로만 연락하는 큰아들 ‘데이비드’와 아버지 없이 두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한 딸 ‘에스더’는 아버지를 이해하거나 용서할 수 없다. 둘에게 들뜬 모습으로 아버지를 맞을 준비를 하는 어머니 ‘메리’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서른을 넘겼지만 열살 소년처럼 행동하는 막내 ‘랄프’만이 아버지와 우호적인 대화를 나눈다. 메리는 남편이 없는 동안 미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안정을 찾았다. 갑자기 등장한 남편을 미워하기보단 반겨주고, 자식들에게도 그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미국계 한국 작가 로이드 서가 쓴 <아메리칸 환갑>은 미국에 이민 간 뒤 적응하지 못하고 가족을 버리고 한국으로 가 버린 아버지가 다시 나타나며 시작된다. 아버지는 예전처럼 뻔뻔하고 무책임한 얼굴이다. 자신이 없는 15년 동안 나머지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해선 반성하거나 돌아보지 않고 마치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듯 행동한다. 시간이 흐르고 아내, 딸,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비로소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하지만 멀어진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기는 힘들다.
상처 입은 가족을 등장시키고, 상처를 제공한 아버지의 반성을 그리지만 그렇다고 <아메리칸 환갑>은 억지 화해나 거짓 위로를 선택하진 않는다. 아버지가 가족의 집에 남게 되지만, 가족의 완전한 결합은 아니란 점에서 해석의 여지는 넓어진다. 친절하게만 보였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진정한 재결합을 청하는 의미로 내민 반지를 받기를 거부한다. 딸은 오빠가 있는 뉴욕으로 떠난다.
작가도 이 작품을 ‘해피엔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윤광진 연출가는 2009년 미국의 공연잡지인 <아메리칸 시어터>를 통해 이 작품을 처음 접하고 그 완성도와 ‘어느 한국 작가가 쓴 것보다 더 한국적인 색깔’에 이 작품을 연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연출가 역시 연극이 “비현실적인 화해가 아니라, ‘다시 화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로이드 서는 2005년부터 3년 넘게 작품을 준비해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연했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주변의 이민자 가정의 모습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윤광진 연출. 장두이, 이영숙, 차진혁, 김혜영, 홍아론 출연. 22일까지 서울 혜화동 게릴라극장. (02)763-1268.
박보미 기자, 사진 게릴라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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