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연극 `마늘 먹고 쑥 먹고’
오태석 연극 `마늘 먹고 쑥 먹고’
오태석(72) 연극 연출가
배우 32명 가면 100여개 써
“순수하고 참을성 있는 곰
현대인 문제에 답 될수도” 무대 정면 가운데에 직사각형의 전광판이 걸려 있다. 주황색 자막이 나타난다. “열다섯에 시집가니 눈작다고 숭일레라 코작다고 숭일레라 키작다고 숭일레라… 에헤헤 에헤헤헤야 에헤헤 에헤헤헤야.” 북과 장구 소리에 맞춰 배우들이 구성진 목소리로 함께 부르는 노래 가사다. 알아듣기 힘든 외국어나 사투리도 아닌데 자막을 쓰는 게 생소하다. 이유가 뭘까. “아름다운 우리말의 맛을 좀 눈으로 보라고 쓰는 거죠. 잘 모르고 살잖아요.” 오태석(72) 연출가의 대답이다. 공연을 나흘 앞둔 4일, 막판 연습에 한창인 서울 명동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고령의 연출가는 불호령을 내리면서 대사, 조명, 음향, 의상을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연극 전체를 실제 공연처럼 순서대로 진행하는 ‘런스루’ 연습을 해야 하는 날이지만 세세하게 지적하고 수정하다 보니 연습 시간이 길어졌다. 약 10분 분량의 마지막 장면을 연습하는 데만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안 들려 안 들려.” “왜 나 안 보고 저 위에 봐? 나 봐 나.” 연극판에서 잔뼈 굵은 배우들이지만, 연출가의 귀와 눈에는 모자라는 부분만 보인다. 주위가 숙연해질 정도로 무섭게 호통을 치다가도 이내 농담을 던지고, 몇번을 거듭해도 성에 차지 않으면 “아이, 참 왜 그러지”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감싸쥐고 고개를 푹 숙이는 연출가와 그를 보는 배우들의 모습은 연극의 한 장면과도 같다. 연극계 거장 오태석 연출가가 국립극단과 손잡고 새롭게 선보이는 연극 <마늘 먹고 쑥 먹고>는 형식과 내용에서 ‘우리 것’의 매력을 강조한다. 전광판 외엔 아무 장치 없이 비워진 무대는 오히려 다양한 해석의 공간이 된다. 시조의 운율을 살린 3·4조 4·4조의 대사는 그 행간의 공백으로 관객을 자연스레 들여놓는다. 연극은 곰과 호랑이가 등장한 단군신화를 살짝 비트는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단군신화 속 호랑이는 사실 웅녀가 자신이 아니라 신(환웅)의 자손을 낳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양보한 게 아닐까’, ‘사람이 된 웅녀가 아직 살아 있다면 어떨까’라는 의문이다. 할머니가 된 웅녀는 ‘새로운 호랑이’와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려 백두산으로 떠나고, 웅녀의 손녀인 ‘순단’은 오래전에 죽은 호랑이를 대신할 ‘새신랑 호랑이’를 찾아 할머니가 있는 백두산으로 향한다. 각각의 여정 속에서 안중근, 김구, 최남선 등 역사 속 인물이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다소 엉뚱한 출현처럼 보이지만, 안중근·김구는 우리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독립투사이고, 최남선은 웅녀와 단군의 이야기가 담긴 <삼국유사>를 깊이 연구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명동성당에서 200m, 롯데백화점에서 200m” 떨어진 극장에서부터 안동 하회마을과 북한의 어느 마을, 일제 때의 공간, 사후 세계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가 1시간 30분 동안 펼쳐진다. 배우 32명은 모두 얼굴에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가면 수만 100개가 넘는다. 동물과 사람의 얼굴을 한 가면은 소박한 모양새다. “가면이 단순할수록 보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투영시킬 수 있다. 같은 장면, 대사에서도 어떤 이는 슬픔을, 또 어떤 이는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가면에 대한 오태석 연출가의 설명이다. 보는 이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와 과거가 ‘왜’ 뒤섞이는지, 갑자기 김구나 안중근이 ‘왜’ 등장하는지, 웅녀는 ‘왜’ 사람이 아닌 호랑이와 결합하고 싶어하는지 끊임없이 물음이 생겨난다. <마늘 먹고 쑥 먹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열쇳말은 ‘원형’이라고 오태석 연출가는 말한다. 오늘날 현대인의 문제를 푸는 해답을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하고 참을성 있는 곰의 성질’을 되찾는 데서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의미를 완성하는 건 관객의 몫일 테다. “관객과 가차이(가까이)서 관객이 ‘아, 내가 저 사람들과 같이 숨을 쉬었구나’ 하게 해 주세요.” 호랑이처럼 무섭던 연출가는 연습 말미, 곰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배우들에게 ‘관객’과의 호흡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 2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02)3279-2233.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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