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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실험삼아 노닐어본 ‘수묵채색 만다라’

등록 2012-04-05 20:30

14년 만에 개인전을 연 진채불화의 대가 이태승 작가가 4일 오후 전시장에서 신작 <불일보조도>(佛日普照圖)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4년 만에 개인전을 연 진채불화의 대가 이태승 작가가 4일 오후 전시장에서 신작 <불일보조도>(佛日普照圖)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태승 작가 14년만의 개인전
위는 <사시가흥도>(四時佳興圖, 2011), 아래는 <동심란도>(同心蘭圖, 2011).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아트스페이스 제공
위는 <사시가흥도>(四時佳興圖, 2011), 아래는 <동심란도>(同心蘭圖, 2011).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아트스페이스 제공
전통기법 진채불화의 대가
천연안료를 기본물감 삼아
솔잎 붓삼고 화면 태우기도
“개성 있는 그림 그리려 해”

서울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 2층 전시장에 들어서자 울긋불긋한 채색화가 활짝 피어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바탕에 알록달록한 꽃비가 내리고 산중의 부처들은 원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림 한편에는 수묵의 난과 나무, 정자, 선비, 동물들이 농담의 경계를 오가며 자유롭게 노닐고 있다.

전통 기법을 사용한 진채(眞彩: 진한 불투명 채색)불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의겸 이태승(55·용인대 교수) 작가가 오랜만에 불가의 선화(禪畵)를 한아름 들고나왔다. 지난 4일 공아트스페이스 2~3층에서 문을 연 그의 개인전 ‘화심선의’(畵心禪意)에는 불화와 전통 진경산수화풍을 결합한 진채불화와 수묵화 등 44점이 내걸렸다. 1998년 5월 서울 불일미술관에서 고려불화를 모사한 작업과 창작불화로 ‘불교회화전’을 연 이래 14년 만이다. 전시된 그림들의 여백에는 불경과 옛 고승의 선시, 유학자의 문장에서 따온 글귀가 붙었다. 작가가 서예가 남전 원중식(71)에게 배운 글씨로 쓰고 손수 파낸 전각 문양을 옆에 찍었다. 온전한 문인화풍 전통이 깃든 그림들인 셈이다.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詩)·서(書)·화(畵)·각(刻)이 한데 어우러진 선(禪)의 수묵채색 만다라’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늘 ‘새로운 그림,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려라’ ‘남과 달라야 하고 심지어는 나의 과거 그림과 달라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그래서 이 전시회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안(학습지도안) 같은 거죠. 그래서 작업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림에 힘을 조금 빼고 여러 가지 새로운 실험을 해보았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문인화의 전통인 시서화각을 기본으로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이 작가는 “그동안 전시를 안 한 것은 공부가 덜 되었기 때문인데, 요새 문인화에서 시와 서를 안 하니까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문인화가 일본 영향을 받아서 기술적인 화법만 중시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채색화에는 먹과 천연안료를 기본으로 하고 여러 물감들을 썼다. 바탕색은 아크릴 등 서양 물감을 쓰되 그 위에 주사 같은 천연안료로 자연스런 발색을 꾀했다. “서양 안료는 인위적으로 만든 물감이라 당장엔 색깔이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날아가요. 반면에 천연안료는 색이 예쁘게 익지요.”

다채로운 실험적 기법을 쓴 것도 근작들의 특징. 안료가 물 위에 뜨면 종이로 떠내어 그 위에 붓을 대보거나 붓을 허공에서 털어내어 빗방울이 땅 위에 떨어진 듯한 맛을 냈다. 또 솔잎에 안료를 묻혀 두들기거나 색칠한 나뭇가지를 종이 위에 붙이기도 하면서 화면 군데군데를 태워 버리는 등 여러 기법을 썼다고 한다. “천진난만하게 예술의 세계에서 노닐어 보았다”고 작가는 웃었다.

이런 다양한 실험은 2층 전시장 입구에 걸린 ‘득의망상’(得意忘象)이란 부제와 상통한다. ‘뜻을 얻으면 상을 잊는다’는 뜻의 이 글귀는 중국 위나라 사상가 왕필(王弼 226~249)의 <주역약례> <명상>에 나오는 것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더욱 각별한 속뜻을 지닌 부제라고 한다.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부터 작가가 가르침을 받아온 최완수(70)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의 충고 때문이다.

“도록을 제일 먼저 선생님께 갖다 드리니까 한참 보시더니 ‘이건 말이야 지옥중생도야!’ 하시더군요. 선생님은 언어를 굉장히 중시해요. 그런데 도록 속 표지 첫 장에 제가 쓴 ‘화심선의’(畵心禪意: 그리는 마음은 선의 뜻이 있다)란 글씨 때문에 걸렸어요. ‘이것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가?’ 물으시더군요. ‘불심선의(佛心禪意: 부처의 마음은 선의 뜻이다)의 불(佛)자를 화(畵)자로 고쳤습니다’라고 했더니 ‘화심은 맞네. 선의는 틀렸네. 자네가 선의를 아시는가?’라고 하시고는, ‘그림들이 시커먼 게 이게 지옥중생도이지, 어떻게 선의인가? 쓰레기들이지’ 하고 웃으면서 야단치세요. 너무하신가 싶으셨던지 ‘부제를 붙이시게. 번뇌망상(煩惱妄想)!’이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들으니 선의라는 말이 어려운 듯해서 선생님의 뜻을 반쯤 담아서(웃음) 득의망상이라는 그림 부제를 붙여보았습니다.”

그는 “선생님이 제 과거와 자라온 과정을 다 아시니까 아직도 고도의 심리전을 쓰신다”며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전시회를 하면서 다음을 생각하니까 너무 즐겁다고 했다. “입던 옷은 벗어야 해요. 얼마나 좋은 옷들이 많은데. 앞으로 전혀 엉뚱한 것이 나올 거예요. 그렇지만 시서화각은 기본으로 가져갈 겁니다.” 10일까지. (02)735-9938.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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