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손장섭씨의 개인전에는 평생을 민중과 현실, 역사를 화두로 민중미술의 외길을 걸어온 작가의 고집이 서려 있다.
손장섭 화가 개인전
50년 세월 담은 50여점에
청회색 색조·굵은 붓질로
디엠제트 등 한국역사 담아
“많이 그렸고 열심히 살았어”
50년 세월 담은 50여점에
청회색 색조·굵은 붓질로
디엠제트 등 한국역사 담아
“많이 그렸고 열심히 살았어”
고희를 훌쩍 넘겼는데도 목소리에는 아직도 묵직한 힘이 서려 있다. 멋쩍은 듯 하얗게 센 흰머리를 쓰다듬으며 연방 사람 좋은 웃음을 짓다가도 민중미술이라는 말이 나오면 금세 정색을 한다.
“왜 민중미술만 고집하느냐고? 내가 지금 민중미술 하는 것 아니잖아. 허허허.(웃음) 그런데 사실은 민중이란 게 뭐야? 우리 자신들 아냐. 그런데 내가 그걸 고집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 민중미술 자체가 우리 자신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버릴 수 있나.”
‘현실과 발언’ 창립 동인이자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초대 회장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을 이끌었던 손장섭(71) 화가가 11일 서울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09년 서울 겸재정선기념관 개관 기념으로 ‘손장섭의 삶과 산야’전을 연 지 3년 만이다. 하지만 80~90년대 민중미술계열 작품과 근작을 아우르는 대규모 개인전은 2003년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있었던 ‘자연과 삶, 손장섭’전 이후 9년 만이다.
지난 주말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작업실을 찾아갔다. 작가는 초저녁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며칠 전 술에 잔뜩 취해서 갤러리에 가보니까 1~3층에 작품을 잔뜩 걸어놓았어. 그걸 보고 있노라니 ‘내가 언제 이렇게 그렸는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 많이 그렸어. 진짜 열심히 했어. 그것만은 자신해. 사실은 열심히 산 거지.”
그는 “모처럼 한판 일을 벌여놓으니까 앞으로 또 어떻게 풀어볼 것인가 고민도 된다”며 소주잔을 털어넣었다.
전시에는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2011), <디엠제트>(2010), <탑>(2007~2008) 등 길이 4m에 이르는 대형작품 약 10점을 포함해 50여점의 작품이 내걸렸다. 그의 50여년 작품 세계를 지탱해온 ‘한국 역사’와 ‘신목’(神木), ‘민중의 삶’, ‘역사적 자연’의 네 가지 주제가 작가 특유의 청회색 색조와 선 굵은 붓질에 농축되어 있다.
특히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 <역사의 창 6·25>(1990) 등의 이른바 한국 근현대사를 그린 ‘역사의 창’ 연작은 여러 역사적 사건을 크고 작은 사각 틀에 부어놓음으로써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빚고 있다. <동해 철책과 해오름>(2009), <통일전망대>(2009), <내금강 마애불>(2008) 등의 ‘풍경화’에도 역사의 현장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녹아 있다. 작가의 뚜렷한 현실인식과 역사체험을 반추하는 작업들이다. 근작에는 화폭 위에 물에 갠 닥종이 원료를 여러 겹 쌓아올려 자연스런 재질감을 살린 뒤 우아한 중간색으로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풍경화도 눈에 띈다.
미술평론가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이번 전시를 ‘스스로 말하는 그림, 기억을 세우는 그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전시회 서문에서 “(그의 그림에는) 언뜻 무표정의 표정 같은 감정의 절제, 혹은 담백함이 비치는데 그것은 화가의 주관을 버리고 기억 자체를 세우는 방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 기억들을 투명한 상태로 놔두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미완의 혁명처럼 아직 해소되지 않은 염원 같은 것을 언제나 강하게 남겨놓았던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노작가에게 다시 물었다. 한평생 민중미술을 고집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그러자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민중미술의) 표상이고 뭐고 그렇게 내세울 생각은 전혀 없어. 그냥 내 성격인 것 같아. 그렇게 살아왔어요. 내가 이 모양으로 생겼으니까. 내가 왜 이걸 그리겠어? 현실에 있으니까. 눈에 보이니까.”
최근 화단의 풍토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우리 아들과 딸이 미술대학을 나왔는데 아버지로서 실망스러워. 내 자식도 그렇지만 요즘 애들이 그림들을 못해요. 열의도 없고 열심히 하지 않아. 정신이 없어요. 내가 무얼 해야겠다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목적의식도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그런 애들한테 무얼 이야기하겠어….”
‘이중섭미술상’ ‘금호미술상’ ‘민족미술상’ 수상작가의 전시는 5월1일까지 이어진다. (02)733-6469.
파주/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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